빈곤 안고 고립된 이들..죽음도 삶만큼 불평등했다

김규남 2021. 10. 2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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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무연고 사망 1216명 리포트]
올 무연고 사망 증가율 38%
코로나19로 돌봄서비스 막히고
사회적 고립 한층 더 심화시켜
2030도 22명..5명은 '청년 고독사'

<한겨레21>은 무연고 사망자들의 삶이 단순한 숫자 이상으로 기록되고 기억되길 바라며 ‘투명인간의 죽음: 무연고 사망자 1216명에 대한 기록’ 인터랙티브 페이지(remember.hani.co.kr)를 연다.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609일 동안 공영장례를 치른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에 관한 자료를 분석했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 지인이었던 1216명의 삶과 죽음은 국화꽃 1216송이를 하나하나 눌러보면 나온다. 개인정보가 드러나지 않도록,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바꿨다.

<한겨레21>이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에 대한 기록을 담은 인터랙티브 페이지(remember.hani.co.kr)를 연다.

지난여름, 서울의 한 주택에서 고독사한 한영진(가명·50대)은 “냄새가 난다”고 이웃이 신고해 숨진 뒤 며칠 만에 발견됐다. 주검은 이미 부패한 뒤였다. 고아였던 그는 코로나19 유행 이후에 노래방을 인수해 운영했다. 장사가 잘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평소 마시던 술에 더 의존했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무연고 사망자로 공영장례를 치른 그의 주검은 ‘무연고 추모의 집’에 봉안됐다.

코로나19 시대에 노숙인, 쪽방촌 주민 등 가난한 이들의 사회적 고립은 심화되고 의료 사각지대로 내몰렸다. 이러한 상황은 죽음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한겨레21>은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609일 동안 공영장례를 치른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에 관한 자료를 분석했다.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으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무연고 사망자의 연령과 주거지, 사망 원인, 생애 등을 다각도로 살피고 무연고 사망자의 가족과 지인을 만났다.

2021년 1~8월 공영장례를 치른 서울 무연고 사망자는 551명이다. 2020년 같은 기간(400명)에 견줘 37.8%(151명) 늘어났다. 2016~2020년 4년 사이 전국 무연고 사망자(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 기준) 연평균 증가율이 13.9%라는 점에 견줘보면, 지난 1년간 무연고 사망자 증가폭이 가팔라진 셈이다.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는 “무연고 사망자가 해마다 증가하는 원인은 빈곤과 가족관계 단절 때문인데, 코로나19 유행이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을 더 빈곤하게 만들고 사람들 사이에 더 거리를 두게 했다”고 말했다. 고독사 전문 연구자인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도 “비대면 거리두기로 인해 기존 돌봄서비스가 약화되거나 지역사회복지관, 노인정 등이 문을 닫으면서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이 심화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난 때 누가 죽음에 이르는지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가 ‘사회적 고립’이라는 점은 1995년 미국 시카고에서 발생한 폭염 사망자 연구 등에서 증명된 바 있다.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쪽방촌의 모습. 고립사한 이들이 살던 곳이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실제로 무연고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서울의 자치구는 영등포구, 용산구 등 빈곤과 질병이 고여 있는 쪽방촌, 노숙인 지원시설 등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무연고 사망자(1216명) 10명 가운데 1명꼴로 영등포구(134명·11%)에서 발생했다. 그다음은 용산구(80명·6.6%)-중구(80명·6.6%), 종로구(78명·6.4%) 순서였다. 영등포 쪽방촌에서는 같은 주소지에서 2~3명씩, 모두 4곳의 주소지에서 9명이 차례로 숨졌다.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예방의학 전문의)는 “무연고 사망자 가운데는 폐결핵, 간 질환 환자들이 많은데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거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더라도 퇴원 뒤 대부분 창문도 없는 고시원, 여관으로 가서 건강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의 삶과 죽음은 다른 듯 닮았다. 가난, 질병, 관계 단절, 알코올, 가정폭력, 사회적 고립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연령대별로 나눠보면 60대가 3명 중 1명꼴(30.4%)로 가장 많았다.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67%에 이른다. 하지만 태어나자마자 숨진 영아와 20대 청년 등도 있었다.

20~30대 무연고 사망자는 22명(1.8%)이다. 이 가운데 ‘청년 고독사’로 추정되는 이는 5명이다. 고독사란,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임종을 맞아 일정 시간(보통 3일)이 지난 뒤 발견되는 죽음을 뜻한다. 중국 국적자 1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4명은 모두 부모의 이혼·사망 등으로 인해 1인 가구로 살았다. 서울 20~30대 청년 1인 가구는 67만2565가구(2020년 기준)로, 전체 1인 가구의 절반가량(48.4%)에 이른다. 22명 가운데 ‘원인 미상’으로 숨진 청년은 모두 5명(고독사 3명 포함)이다. 송인주 선임연구위원은 “청년이 왜 알 수 없는 이유로 숨지느냐는 질문 아래, 고독사 현장에 남아 있는 물건들을 바탕으로 경제, 복지, 일자리 등의 영역을 전반적으로 분석하는 ‘사회적 부검’ 방식의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진수(0)는 2020년 겨울의 문턱에,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 앞에 있던 고무통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태어나 출생신고가 안 된 진수는 ‘성명 불상’으로 기록된 채 46일간 안치실에 있다가 경기도 서울시립묘지의 ‘나비정원’에 뿌려졌다.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인 제사상엔 뽀로로 캐릭터 음료수와 초콜릿우유가 올라왔다. 무연고 사망자 1216명 가운데는 진수 같은 영아가 6명 포함됐다. 베이비박스나 거주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아이들이다.

무연고 사망자들의 사망 원인은 일반인들과 다르다. 2020년 서울 무연고 사망자 665명의 사망 원인에 대해 나백주 교수의 도움을 받아 심층 분석해봤더니, 1순위 사망 원인은 ‘달리 분류되지 않은 증상·징후’(24.4%·162명)였다. 이는 전국 사망자 평균(9.5%)보다 3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통계청 ‘2020년 사망원인통계 결과’ 보고서). 일반인 사망 원인 1순위인 암의 경우엔, 무연고 사망자는 16.1%로 사인 2위였지만 전국 사망자(27.5%)보다는 크게 낮았다. 반면 간 질환, 호흡기 결핵 등 특정 질환이 사망 원인이 된 비중은 일반인보다 아주 높았다. 건강 불평등이 죽음의 불평등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수치들이다.

열쇳말: 무연고 사망자란?
①연고자가 없거나 ②연고자를 알 수 없거나 ③연고자가 있지만 주검 인수를 거부·기피하는 경우에 기초지방자치단체가 개입해 무연고 사망자 주검 관련 업무를 맡는다.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는 공영장례를 치른다.

김규남 박다해 <한겨레21> 기자 3strings@hani.co.kr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한국언론진흥재단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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