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라면 주제에"..하림의 '가격 도발'

나원식 2021. 10. 26.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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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미식 장인라면' 가격 2천원 넘어
"인스턴트서 빼달라"..공격적 마케팅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우리나라 라면 업계에는 '전설'이 있습니다. 10년 전 일입니다. 라면 신제품 가격이 너무(?) 비싸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심지어 정부가 나섰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장 광고를 했다며 과징금을 부과해 논란에 불을 붙였습니다. 결국 이 제품은 출시 4개월 만에 판매를 중단해야 했습니다. 바로 '신라면 블랙' 이야기입니다.

지난 2011년 4월 농심은 신라면 출시 25주년에 맞춰 '신라면 블랙'을 내놨습니다. 당시 농심은 이 제품이 '우골보양식사'라며 프리미엄 라면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무엇보다 제품의 가격이 이슈였는데요. 권장가는 1600원으로 정했습니다. 기존 신라면보다 두 배가 넘는 가격이었죠.

하지만 당시는 이명박 정부가 민생 물가 안정을 외치던 때였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물가 안정에 힘을 실었던 시기였습니다. 실제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취임 이후 첫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라면값 100원 인상은 서민들에게 타격이 크다"고 직접 언급한 바 있습니다. 신라면 블랙이라는 프리미엄 제품이 출시되기에는 시기가 좋지 않았던 겁니다.

공정위가 신라면 블랙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한 건 '허위·과장 광고'를 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신라면 블랙이 기존의 신라면에 비해 품질이 고급화된 정도에 비해 판매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됐다는 설명입니다. 농심은 결국 이후 2011년 8월 초 신라면 블랙을 1450원으로 내렸다가, 같은 달 말에는 아예 국내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사진=신라면 블랙 출시 당시 인쇄 광고.

다만 신라면 블랙은 해외에서 꾸준히 인기를 끌면서 14개월 뒤인 2012년에 국내 판매를 재개했습니다. '신라면 블랙 사건'은 국내 라면 업계에 전환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 사건 이후 경쟁사들은 조금씩 1000원이 넘는 '프리미엄' 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합니다. '라면 값 1000원'의 벽이 깨지기 시작한 겁니다.

이후 지금까지 라면 값의 심리적 저항선은 '1000원 대'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오뚜기가 올해 초 고급 라면 브랜드라며 선보였던 '라면비책'의 닭개장면 가격은 1800원입니다. 이 정도만 해도 '너무 비싼 것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라면 시장에 이를 훌쩍 뛰어넘는 2000원대 라면이 등장했습니다. 이제 막 라면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하림'이 내놓은 'The미식 장인라면'입니다. 닭고기를 팔던 하림이 라면 시장에 진출한 것도 독특한데, 라면 가격을 무려 2200원에 책정하면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국내 라면 시장 점유율 1, 2위인 신라면과 진라면(700원 대)보다 무려 세 배에 달하는 가격입니다.

'신라면 블랙'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여론은 라면 값에 대해 무척 민감합니다. '서민음식'의 대표 격으로 여겨지는 만큼 여론이 들썩이면 정부가 나서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림은 도대체 왜 이런 비싼 라면을 내놓은 걸까요.

하림 측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신제품 출시에 앞서 실시한 소비자 조사에서 "라면 값이 비싸더라도 제대로 된 라면을 원하는 소비자가 많았다"는 설명입니다. 전체의 약 30~40%나 됐다고 하는데요. 이들을 타깃으로 한 제품이라는 겁니다. 또 라면 건더기나 육수 제조 방법 등을 차별화해 원가가 높아진 것도 판매가 상승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합니다.

/사진=하림 'The미식 장인라면' 영상 광고 화면 캡처.

흥미로운 점은 하림이 이런 '논란'을 피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되레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하림이 내놓은 영상 광고를 보면 그렇습니다. 이 제품이 기존 라면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국물을 남기지 말라', '아이들에게도 추천한다'는 등의 도발적인 문구를 넣었습니다. '인스턴트에서 빼달라'고 호소하기도 합니다.

기존 라면 업체들의 반응은 일단 회의적입니다. 한 라면 업체 관계자는 "품질이 좋은 제품을 못 만들어서 내놓지 않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합니다. 라면은 워낙 가격 저항선이 공고한 탓에 제품의 품질을 무작정 높이기는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고급'으로 만들면 비쌀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안 팔린다는 겁니다.

하림은 '더 미식'이라는 브랜드를 연 매출 1조5000억원의 '메가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내놨습니다. 일단 높은 가격만으로도 신제품에 대한 관심은 높아 보입니다.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 데는 성공한 듯합니다.

하지만 하림의 라면이 과연 2000원 대라는 가격 저항선을 깨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데도 성공할 수 있을까요. 또 이 제품 출시가 국내 라면 업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혹시 '경쟁사'들이 이제 2000원 대 프리미엄 라면을 내놓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요. 이는 아마 이 제품의 성공 여부에 따라 결정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림이라는 라면 업계 신생 업체가 던진 돌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무척 궁금합니다.

나원식 (setisou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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