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뒷산 옮겨 가기
며칠 전 이사를 했다. 15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원주로 내려왔다. 스무 살 때부터 그리도 상경하고 싶어했거늘 막상 고향인 강원도로 다시 돌아가는 기분은 의외로 담담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복닥거리며 살다가도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자연 가까운 곳에 가서 살리라 막연히 생각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에서 15년을 사는 동안 줄곧 한 동네에서 살았다. 그사이 이사를 네 번이나 했어도 그때마다 번지수만 바뀔 뿐 ‘서울시 서대문구 성산로’로 시작하는 주소에는 변함이 없었다. 누군가 나더러 어디 사느냐고 물으면 ‘신촌’에 산다고 말했다. 하지만 흔히 ‘신촌’ 하면 연상하는 번화가 명물 거리에서 내가 살던 집까지는 20분을 걸어야 했다.
내가 살던 집은 신촌에서도 산 밑에 있었다. 연세대 본관에서 북문 쪽으로 걸으면 철조망을 끼고 산길이 나타나는데, 이 산길의 가장 높은 곳에 안산(鞍山·295.9m) 정상이 있다. 산세가 말의 안장을 닮아 이름 붙은 안산의 능선을 타고 계속 오르면 인왕산과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홍제동, 서쪽으로는 연희동, 동쪽으로는 독립문, 남쪽으로는 봉원사를 지나 우리 집에 닿는다.
이사 전날, 안산을 오르며 이 산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던 지난 나날을 회상했다. 세계 곳곳의 명산(名山)을 찾아 밖으로만 돌던 나는 코로나 사태로 해외로 향하는 발이 묶인 후에야 비로소 그간 눈여겨보지 않았던 집 뒷산과 친해졌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변함없이 나를 받아준 안산. 이사를 한다는 건 집이 바뀌는 것인 동시에 뒷산이 바뀌는 것이구나. 집을 옮긴다는 건 산을 옮긴다는 것이구나. 작고 낮은 산의 소중함과 위대함을 가르쳐준 안산에 고마움을 전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창문 밖으로 보이는 새 뒷산, 건등산(建登山·259.5m)에 잘 부탁한다고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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