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잘 먹고, 잘 치웠습니다
[경향신문]
배달 음식을 주문할 때 500원만 더 내면 환경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은 덜 수 있게 됐다. 물론 서울 강남 일대에서만 가능하다. 지난 12일부터 요기요가 시범 운영하는 ‘다회용기 배달’ 카테고리를 선택해서 주문하면 가능하다. 직접 해보니 먹고 치우기가 훨씬 깔끔했다. 수거도 편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먹은 뒤 산처럼 쌓이는 일회용기를 볼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배달산업은 코로나19의 확산과 함께 급격히 몸을 불려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온라인, 그중에서도 특히 모바일 음식 거래액은 15조원을 넘어섰다. 올해 1, 2분기 모바일 음식 거래액은 11조5000억원에 달한다. 작년 전체 거래액이 16조5000억원인 것을 생각하면 2분기 누적 거래액까지만 해도 벌써 작년의 70%에 도달한 것이다.
부작용도 있다. 플랫폼 산업의 노동문제 등도 많이 지적됐지만, 먹기만 하면 쌓이는 플라스틱 용기도 골칫거리다. 간편식을 선호하는 청년 1인 가구를 일회용 쓰레기 문제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기사도 적지 않다. 변명은 있다. 당연한 곳에서부터 비용을 줄이기 위해 최소화·간편화된 삶을 사는 1인 가구 청년에게 4인 가족 중심의 포장 재료는 사치다. 이미 조리된 배달 음식, 포장재가 많이 들어간 밀키트 등을 사 먹는 것이 가성비가 좋다.
배달 쓰레기, 생활용 일회용 쓰레기의 주범이 청년이라면, 일회용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한 생활 방식을 선택하는 것도 청년세대다. 강남에서 다회용기 배달서비스를 체험해보고 해당 가게의 사장님 인터뷰까지 진행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사장님도 20대 청년이었다. 다회용기 배달 시범 사업에 동참한 이유를 물으니 “사업자로서 비용이 더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배달 쓰레기가 남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고 답했다. 권리에 우선순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는 환경보다 개발 논리, 경제 논리에 더 익숙해 우선순위를 매겨왔다. 그렇게 비용에 밀려온 나의 권리를 이제 “더는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청년세대에서 많아지고 있다.
다회용기 배달이 시작되었다 해도 갈 길은 멀다. 다회용기로 만들어야 할 용기 종류는 천차만별인데 배달 플랫폼이 팔고 있는 일회용품은 너무 싸다. 자영업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다회용기 배달 주문은 비용보다 가치를 위한 선택이다.
아직 우리는 살아갈 날이 많은데, 여름은 더 견딜 수 없게 더워지며, 인류가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는 해가 갈수록 늘어난다. 인류를 넘어 동물의 생명, 생태계까지 위협받고 있다. 지금까지의 생활 방식을 고수한다면 우리 삶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소비자도 기후 위기의 가해자임을 분명히 알고, 기업과 제도에도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왜 배달앱은 소비자에게 다회용기를 선택지로 주지 않을까? 왜 일회용기를 사용하지 않는 선택지는 온전히 가치를 생각하는 개인의 부담인 걸까?
답을 함께 찾고 싶었다. 청년참여연대가 공부하며 고민한 결과를 11월1일부터 참여연대 지하에서 시작되는 <잘 먹었습니다, 잘 치웠습니다?> 전시에 담았으니, 찾아와주시면 좋겠다. 지속 가능한 지구,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고민에 동참해주시라.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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