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누리호에 ‘국가 전략’ 있나

김진명 워싱턴 특파원 2021. 10. 2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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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독자 개발한 ‘누리호’ 발사에 대한 외신 반응을 보면, 그 군사적 의미를 상당히 중시하는 것 같다. 블룸버그통신은 20일 자 기사에 “아시아에서 군비경쟁이 일어나는 가운데 한국이 새 로켓을 발사했다”는 제목을 붙였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발사는 대미 군사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신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국방비를 늘리고 있는 한국에 군사적 역량상의 함의를 갖는다”고 했다. 누리호 기술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대에서 발사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ll)가 우주를 향해 비행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지난달 초 우리 군이 독자 기술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을 때도 미국의 핵 문제 전문가들은 술렁거렸다. 비핀 나랑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당시 트위터에 “한국이 독자적 SLBM을 시험했다. 이제껏 8국이 그렇게 했는데 7국은 핵무기를 갖고 있다. 한국만 그렇지 않다”고 썼다. 한국이 독자 핵무장을 염두에 두고 SLBM을 개발한 것이냐는 얘기가 나올 만했다. 앙킷 판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핵정책 담당 선임연구원은 “만약 (한·미) 동맹이 갈라지고 한국의 안보 수요가 극단적으로 바뀌면 SLBM 프로그램은 생존 가능한 기본적 핵 전력에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기초가 될 것”이라고 했다.

외국 전문가들이 한국의 핵·미사일 무장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논리적 추론의 결과다. 한국처럼 북한의 핵 위협과 중국의 부상을 지근거리에서 직면하고 있는 국가는 없다. 동시에 한국에는 충분한 경제력과 기술력이 있다. 당장 핵무장에 나서지 않더라도 미래를 대비해 장기적 준비를 하고 있으리라고 당연하게 짐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국내 정치를 잘 아는 워싱턴의 ‘한국 전문가’들 반응은 사뭇 다르다. 한 전문가는 한국 핵무장론에 대해 묻자 “방어용 무기체계인 사드 포대 하나 들여놓는 것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핵무기를 어떻게 개발하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한반도 전문가는 현 정부 정책에 대해 “원전은 없애면서 원자력추진잠수함은 갖고 싶어 한다. 또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데, 원전 없이 그게 가능하냐”고 말했다. 한마디로 앞뒤가 안 맞는 정책들을 남발하고 있을 뿐, 별다른 계획은 없는 것 같다는 평가였다. 속살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미국 행정부나 의회가 만든 ‘국가 전략 문서’들을 보면 감탄할 때가 많다. 국가의 당면 문제가 무엇이고, 장·단기적 목표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며, 그 해법은 어떤 것들이 될 수 있는지 논리가 정연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언제쯤 이런 ‘국가 전략’이 제대로 논의될까. ‘대장동’과 손바닥 ‘왕’ 자 같은 것으로 뒤덮인 대선판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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