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식의세계속으로] 동물복지와 도살

- 입력 2021. 10. 25.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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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초에서 14분.

가축을 도살하는 과정에서 칼로 동맥을 자른 뒤 동물이 의식을 잃고 죽음을 맞는 시간이다.

동물복지 운동이 상대적으로 강한 유럽에서 가축 도살 정책은 오래전부터 강한 규제의 대상이었다.

일례로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사전에 기절시킨 뒤 피를 뽑는 등의 도살 과정을 진행하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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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초∼14분.. 동물의 숨이 끊어지는 시간
유럽 "가혹한 고통의 과정 최소화" 목소리
14초에서 14분. 가축을 도살하는 과정에서 칼로 동맥을 자른 뒤 동물이 의식을 잃고 죽음을 맞는 시간이다. 프랑스 국립농업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양의 경우 평균 14초면 숨을 거두고 송아지는 5분, 큰 소는 14분까지 도살 과정에서 죽음의 시간을 거친다. 최근 유럽에서는 이 가혹한 고통의 과정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는 여론과 정책이 거세다.

동물복지 운동이 상대적으로 강한 유럽에서 가축 도살 정책은 오래전부터 강한 규제의 대상이었다. 일례로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사전에 기절시킨 뒤 피를 뽑는 등의 도살 과정을 진행하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농업 대국 프랑스는 이미 1964년부터 이런 법을 적용했다.

다만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 전통적으로 계승된 의례적 도살에 관해서만 예외를 인정해 왔다. 이슬람의 ‘할랄’이나 유대교의 ‘코셔’라는 표현은 종교에서 명하는 방식으로 정결하게 준비한 음식을 말한다. 특히 가축을 도살할 때는 상처가 없이 온전히 살아있는 상태에서 피를 빼내야 한다. 유대교와 이슬람이 사전 기절을 시키는 방식에 반대하는 이유다. 기절을 위한 가스나 주사, 전기마취 등은 모두 동물에 상처를 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럽이 동물복지와 종교적 소수집단의 권리를 취급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스위스, 덴마크, 노르웨이 등은 동물복지를 우선시해 이슬람이나 유대교의 의례적 도살을 금지해 버렸다. 네덜란드는 2017년 목을 벤 뒤 40초 뒤에도 여전히 살아있으면 기절을 시키도록 타협적인 방향으로 법을 개정했다. 벨기에는 2017년에 의례적 도살 금지법을 정했고, 이슬람과 유대교 집단이 곧바로 유럽법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유럽법원도 작년 말 해당법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결한 바 있다. 유럽 차원에서 동물복지와 종교자유의 경계를 제시한 셈이다.

점점 많은 나라가 의례적 도살을 금지하자 프랑스처럼 여전히 가능한 국가로 도살이 우회·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프랑스에서 생산된 할랄이나 코셔 육류가 유럽 전역으로 유통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프랑스도 의례적 도살에 반대하는 여론이 80% 이상으로 이를 금지하자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프랑스가 동물 학대의 중심이 돼서는 곤란하다고 외치고 있다.

소나 돼지 등 일반적인 가축뿐 아니라 생선도 포획과 ‘도살’ 과정에서 고통 최소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2020년 영국에서 출간된 ‘생선의 복지’라는 책에서 생물학은 생선이 조류나 척추동물과 유사한 두뇌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고통에 대해 민감하다고 설명한다. 우리의 밥상까지 오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생선이 매일 그물 속에서 숨이 막히고 산 채로 내장이 뽑히거나 냉동되며 고통을 받는다는 말이다. 산 채로 가축의 목을 베는 이슬람이나 유대교에 야만적이라며 돌을 던진다면 생선의 복지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육식의 서구와 채식의 동양을 대비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요즘은 오히려 서방에서 동물을 의인화해 윤리적 잣대를 적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동아시아는 최근 동물복지보다는 저렴한 가격과 기막힌 맛을 위한 동물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듯하다. 아직 경제발전의 역사가 짧아서 동물복지까지 고려할 정신적 여유가 없는 걸까.

조홍식 숭실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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