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장사 망쳤다" "상한가 종목 놓쳤다" KT 먹통에 곳곳 아우성

조유미 기자 2021. 10. 25.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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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인터넷 85분 먹통.. 우리 일상이 멈췄다
배달앱·배달대행사 연결 안되고 가게 전화하니 "없는 번호입니다"
원격수업 중단되고 진료 차질 "인터넷 사회의 취약점 드러내"
오전 11시 20분쯤부터 전국 곳곳에서 KT의 유·무선 통신 장애를 겪고 있는 가운데 25일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한 식당에 KT 접속장애로 인한 현금결제 안내문이 붙어 있다./뉴시스

25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중구에서 중국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하경(60)씨는 아무래도 이상해 배달앱 ‘배달의민족’에 전화를 걸었다. 평소 같았으면 줄줄이 들어와야 할 배달 주문이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달앱 본사에 거는 전화조차 “뚜, 뚜” 소리만 날 뿐 연결이 되지 않았다. 휴대전화, 유선전화 모두 마찬가지였다. 김씨는 “혹시나 해서 우리 가게로 전화를 걸어보니 ‘없는 번호’라는 안내가 나오더라”며 “손님들이 우리 가게 망한 줄 아는 거 아닌가 싶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1시 20분쯤부터 KT의 유·무선 서비스가 85분가량 일제히 마비되면서 전국에서 큰 혼란이 빚어졌다. 자영업자들은 점심 장사를 망쳤고, 직장인들은 업무를 멈춰야 했다. 실시간 주식 거래와 학교의 비대면 수업도 중단됐다. 인터넷이 공기처럼 익숙한 한국 사회에서 한 통신사의 인터넷망 마비가 모든 일상(日常)을 멈춰 세운 것이다.

자영업자들은 점심 장사를 앞두고 결제 시스템이 마비돼 혼란을 겪었다. 경기도 평택시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43)씨는 “갑자기 가게 안에 음악도 나오지 않고 결제가 안 돼 점심 장사를 망쳤다”며 “휴대전화가 KT인 손님들은 밥값으로 계좌 이체도 못 해 정말 난감했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백반집 사장 박모씨는 “누가 요즘 현금을 가지고 다니느냐”며 “결국 한 테이블은 수기로 외상을 달아놓고 나가고 다른 사람들은 카드 결제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밥을 천천히 먹었다”고 했다.

배달 기사와 식당을 연결해주는 배달대행 업체 ‘생각대로’의 프로그램도 낮 12시쯤까지 먹통이었다. 또 다른 배달대행 업체인 ‘바로고’도 마찬가지였다. 이 업체 관계자는 “40분이면 배달 기사 한 사람당 배달 3건을 했을 시간”이라며 “1인당 1만원에서 1만5000원어치 배달을 못 한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망 마비의 여파는 회사와 학교에도 미쳤다. 서울 도봉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29)씨는 “재택근무 중 유선과 무선 인터넷이 모두 먹통이 돼 일을 할 수 없었다”며 “집 근처 기지국 문제인 줄 알고 다른 동네 카페까지 갔는데 소용이 없었고, 뒤늦게 전국적으로 KT 통신망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허탈했다”고 말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중학교 교사 최모(53)씨는 “실시간 수업을 하고 있는데 KT 인터넷망을 쓰는 학생 10여 명이 수업에 들어오지 않다 보니, 그대로 진도를 나갈 수 없어서 결국 수업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KT 인터넷망이 전국적으로 마비된 25일 광주광역시 조선대병원에서 신용카드 수납을 하지 못한 외래 환자들이 시스템이 정상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병원에서는 카드 수납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자 환자들에게 현금 결제 또는 계좌 이체를 해달라고 안내했다. /연합뉴스

무인으로 운영되는 구청 민원 발급기와 버스터미널 발권기도 먹통이 되면서 대면 창구에도 사람이 몰렸다. 병원도 인터넷이 마비되자 진료를 멈춰야 했다. 서울산부인과 김동석 원장은 “환자가 오면 과거 진료 기록과 약물 복용 내역을 확인해야 하는데, 인터넷이 먹통이라 진료를 볼 수 없었다”며 “사전 정보 없이 진료하면 자칫 의료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아픈 분들을 마냥 지켜만 보고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경기지사직 사퇴 기자회견도 온라인 화면 송출이 중단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서울 성동구 한국 기원과 중국 베이징 중국 기원에서 온라인으로 열릴 예정이었던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8강전도 인터넷 문제로 하루 연기됐다.

주식 투자자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집단 소송 할 주식 투자자 구한다” “상한가 종목 놓쳐서 30만원 정도 손해 봤다” 등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도 “단체로 소송 걸어야 하는 거 아니냐” “손님 두 분 내보내고 미치겠다. 점심 장사 망했다” 등 성토가 이어졌다.

KT는 피해 규모에 대해 “전국적으로 장애가 발생했기 때문에 실제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조사를 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KT의 인터넷망이 사실상 모든 분야에 연결돼 있기 때문에 사용자들의 피해 규모가 예상을 크게 뛰어넘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8월 기준 KT의 이동통신 가입자는 1700만명, 초고속 인터넷 940만명, 인터넷TV 900만명에 이른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이번 사고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취약점을 보여준 것”이라며 “통신망의 안전, 안정성을 점검해야 할 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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