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묘지서 무릎 꿇은 전두환 고향 주민들

글·사진 강현석 기자 2021. 10. 25.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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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5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은 경남 합천군 주민들이 추모탑에서 무릎을 꿇고 오월 영령들을 추모하고 있다.
9개 시민단체 등 광주 찾아
“전씨 아호 딴 일해공원 죄송”
5·18단체들과 간담회 갖고
“국립묘지 안장 꼭 막을 것”

“합천에는 전두환의 호를 단 공원이 버젓이 생겼습니다. 막지 못한 미흡함을 반성하고자 합니다. 합천군민 여러분, 무릎을 꿇어 주십시오.”

25일 오전 11시15분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추모탑 앞. 김영준 생명의숲되찾기합천군민운동본부 공동대표(63)가 제안하자 경남 합천에서 온 시민 25명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김 공동대표는 “합천군에는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전두환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이 있다. 죄송스럽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91)의 고향인 합천군 주민들이 광주 오월 영령들 앞에 무릎 꿇고 사죄했다. 이들은 일해공원의 명칭 변경 등 전씨 관련 기념시설물 철거와 전씨 국립묘지 안장 반대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겠다고 밝혔다.

광주를 찾은 이들은 생명의숲되찾기합천군민운동본부(합천운동본부) 소속 회원 21명과 전두환적폐청산경남운동본부 소속 회원 4명 등이다. 합천운동본부는 지난해 6월 합천지역 9개 시민단체가 결성했다. 이날 오전 버스로 국립5·18민주묘지에 도착한 이들은 5·18묘지와 5·18희생자들이 처음 안장됐던 망월동 묘역을 참배했다.

김 공동대표는 “지난해부터 광주를 찾으려고 했는데 수해 등으로 힘들었다. 우리는 광주 시민들에게 빚이 있다. (일해공원 명칭 변경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부족했다”면서 “오월 영령들에게 힘을 빌려 다시 각오를 다지겠다”고 말했다. 합천군은 2004년 개장한 ‘새천년 생명의숲’ 공원 이름을 2007년 전씨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으로 변경했다.

합천에서 오이와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는 고동의 합천운동본부 간사도 이날 일손을 내려놓고 광주를 찾았다. 고씨는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윤석열씨의 ‘전두환 옹호’ 발언으로 지역에서도 일해공원 명칭 변경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국민의힘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5·18묘지를 참배한 이들은 이날 오후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에서 5·18관련단체들과 간담회를 갖고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강재성 합천군 농민회장(합천운동본부 공동대표)은 “전씨에 대한 역사적·사법적 평가는 끝났지만 추종자들이 많다. 합천에서부터 전씨 추종 세력을 막아야 한다”면서 “광주 시민들과 연대하고 국민들에게 호소해 전씨의 국립묘지 안장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합천군 주민들은 지난 6일부터 전씨의 국립묘지 안장을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진행하고 있다.

합천 주민들은 5·18민주화운동 42주년인 내년 5월 합천군에서 5·18단체와 기념식을 함께 개최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기봉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은 “(합천 주민들이) 정말 힘든 곳에서 ‘전두환 흔적 지우기’를 노력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들었다”면서 “국민들의 공감에서 벗어난 일해공원 명칭을 존속하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일이다. 힘을 합쳐 나가겠다”고 밝혔다.

간담회를 마친 이들은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서를 구하는 심정으로 합천 주민들은 전두환의 그림자를 없애는 데 광주 시민과 함께 손잡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전씨의 공적을 옹호하고 찬양하는 것은 국민의힘 입장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을 소속 정치인들에게 주지하고 모든 공직선거 후보공천 기준으로 삼을 것을 천명하라”고 요구했다.

글·사진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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