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누리호, 성공과 실패는 '깐부'다

이준기 2021. 10. 25.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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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지난 21일 국내 첫 독자 발사체인 한국형발사체 '누리호'가 우주기술 자립의 부푼 꿈과 염원을 실고 우주를 향해 힘차게 날아 올랐다. 이날 오후 5시 15분께 더미 위성이 정상 분리될 때까지는 모든 과정이 완벽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해 '미완의 성공'이라는 타이틀을 얻는 데 그쳐야 했다. 그럼에도 처음 발사한 누리호가 이 정도 성과를 거둔 것 만으로 "대단한 일"이라며 격려와 희망 섞인 평가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언론에서도 "7부 능선 넘었다", "절반 이상의 성공", "값진 실패",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등 누리호 첫 발사에 대한 찬사와 안타까움을 쏟아내며, 내년 5월 예정된 2차 발사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통상, 처음 개발한 발사체의 성공률이 30%에 그쳤다는 점에 비춰볼 때, 우리의 누리호는 기대 이상의 비행을 완수한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만약 3단 엔진이 조기 연소되지 않고 위성 모사체를 목표 궤도에 진입시켰다면 '완벽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 첫 비행에 나선 누리호가 보여준 'K-발사체'의 저력에 전 세계가 놀라워했다. '세계 7대 우주강국' 진입이 머지 않음을 증명한 일은 값진 소득이다. 특히 연구진들이 발사 전 부터 가장 우려했던 75톤 엔진 4기를 클러스터링한 1단부 비행, 1단과 2단 페어링, 2단과 3단의 분리·점화 등 단 분리가 원활히 이뤄져 비행했다는 점도 커다란 수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 12년 동안 누리호 개발을 위해 숱한 난관과 어려움 속에서 불굴의 도전정신과 인내로 헌신한 항우연 연구진과 참여 기업인 등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누리호가 남긴 미완의 과제를 완성하려면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가장 먼저 발사 성공의 발목을 잡은 '3단 엔진의 조기 연소' 원인을 철저하게 찾아 이를 해결하는 데 기술적 역량을 모아야 한다. 내년 5월 2차 발사를 비롯해 2027년까지 예정된 총 5차례의 발사 성공을 위해선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정이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중국 등 발사체 강국도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발사체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포스트 누리호 이후의 우주개발 비전과 전략을 세우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다가오는 우주경제 시대를 맞아 후발주자인 우리나라가 어떤 경쟁력을 무기로 우주 강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지에 대한 보다 담대하고 명확한 미래 청사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우주개발에 대한 큰 그림이 없다 보니, 개별 프로젝트 단위로 사업을 추진할 수 밖에 없는 한계에 놓여 있었다. 이 때문에 미래를 내다보고 연속성 있게 우주개발 사업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이 뒤따랐다. 지난해 '한국형발사체 고도화사업'이 도전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예비타당성조사에서 탈락한 것도 우리가 안고 있는 우주개발의 한계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실패가 용인받지 못하는 환경도 바꿔야 한다. 2009년, 2010년 나로호는 두 번의 실패를 극복하고 2013년 세 번째 발사에 성공했지만, 실패 책임을 지고 기관장이 물러나고, 발사 책임자도 감사를 받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관료사회의 병폐, 즉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후진적인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진 것이다.

말로만 그럴싸하게 실패를 용인하겠다고 했을 뿐, 실제 실패 시 가해지는 책임은 고스란히 연구자들의 몫이 되고 만다. 내년이면 우리나라가 우리별 1호를 쏘아 올리며 우주개발에 나선 지 정확히 30년을 맞는다. 30년이란 다소 짧은 기간에 위성과 탑재체 기술자립에 이어 자력 발사체를 확보하기까지 실패 없이 이룬 건 없다. 우리가 우주를 향해 걸어가야 할 앞으로 30년의 길에도 실패는 언제든지 찾아온다. 우주를 향한 도전에는 언제나 실패와 성공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대화에 빗대면, 실패와 성공은 '깐부'인 셈이다. 누리호 1차 발사를 통해 실패의 진정한 의미를 곱씹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bong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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