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로 간 청년의사 최세진씨 "교도소 근무 경험은 내 인생의 전환점..중독환자들을 위한 사회운동 하고파" [인터뷰]

이진주 기자 2021. 10. 25.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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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순천교도소와 서울구치소에서 3년간 대체 복무를 한 의사 최세진씨는 “교정시설에서 일하면서 사회를 보는 눈이 많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인턴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그는 향후 중독환자들을 위한 사회운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교도소에서의 생활이 앞으로의 내 인생에 화두를 남겼다고 생각해요. 개인과 사회의 건강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어떻게 서로를 치유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말이죠. 서로를 위한 치유 활동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더 고민하고 싶어요.”

순천교도소와 서울구치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보낸 3년의 기록을 담은 에세이 <진짜 아픈 사람 맞습니다>(어떤책)을 펴낸 최세진씨(32)를 지난 21일 전화 인터뷰로 만났다.

최씨는 2018년 서울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뒤 대체 복무로 교정시설을 지원했다.

한국에서 의사가 대체 복무를 하는 방법은 크게 공중보건의사, 군의관, 병역판정검사 전담 의사가 있다. 교정시설은 다른 곳에 비해 업무 강도가 세고 수용자를 마주해야 하는 두려움과 그들에게 고소당할 위험도 있어 의사들이 기피하는 근무지로 알려져 있다. 앞서 교정시설에서 근무했던 선배들도 최씨를 말렸다.

교도소 근처에는 가본 적도 없었던 최씨가 교정시설 근무를 지원한 데는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의 저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의 영향이 컸다.

“이 책이 제 삶의 방향을 바꾸었어요. 익숙하지 않은 존재들에게 조명을 드리우는 이 책은 단순히 익숙하지 않음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아요. 책 속에서 지적한 건강 문제를 일부분이라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싶었어요.”

졸업한 해 4월 최씨는 순천교도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대체 복무를 시작했다. 출근 첫날 깔끔한 회사 건물 같은 교도소 외관을 보고 마음이 놓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교도소 안에 들어가기 전까지였다.

“교도소 안으로 들어가려면 수많은 철문을 통과해야 했어요. 철문이 열리고 닫힐 때 나는 특유의 쇠소리와 빡빡한 보안검색을 통과해 수용자들을 봤을 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신기함과 공포가 존재했어요.”

상주 의사가 없는 순천교도소에서 공중보건의사는 최씨가 유일했다. 근무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일 약 80여 명의 수용자를 진료했다. 야간에도 응급진료를 요청하는 이들이 많았다. “진료 분야가 가정의학과 수준으로 광범위했어요. 고혈압과 당뇨 같은 만성질환부터 피부병, 정신질환, 중독에 불면을 호소하는 수용자도 많고요.”

경범죄자부터 사형수까지 다양한 수용자들이 각종 통증을 호소하며 진료실 앞에 줄을 섰다. 그중에는 상습적으로 진통제나 마약류성 약을 더 달라고 하거나 스스로를 정신질환자나 성소수자라고 주장하며 방 변경을 요청하는 수용자들도 있었다. 꾀병을 부리는 수용자와 진짜 아픈 환자를 구분해 내는 일은 교정의료의 어려운 점 중 하나라고 최씨는 말했다.

한번은 마약수용자가 자신이 요청한 강한 수면제성 약을 처방해 주지 않는다며 진료실에 있는 모니터를 최씨에게 던지는 일이 있었다. 또 손가락에 피지 낭종이 생긴 수용자를 성실하게 치료했는데 알고 보니 그가 유명 사건의 가해자인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한 70대 수용자는 뇌경색 후유증으로 음식물을 제대로 삼킬 수 없어 형 집행정지를 받고 출소해 요양병원에서 죽음을 맞았다. 최씨는 “환자로서 상태가 많이 안 좋아 외부 병원에도 내보내고 저도 최선을 다했지만 교도소라는 복합적인 이유 등으로 해줄 수 있는 것에 대한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교정시설에서 의사로 일한다고 하면 ‘왜 범죄자를 국민 세금으로 치료해 줘야 하는가’라는 사람들의 질문을 많이 받는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당연히 적법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제 판단의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의사는 지금 치료가 필요한가 아닌가를 첫 번째로 판단해야 한다고 배웠으니까요. 그래서 테러리스트를 여느 환자와 마찬가지로 대하는 ‘국경 없는 의사회’를 많이 생각했어요.”

최씨는 교정시설에서 근무하며 새로운 시도에 앞장서기도 했다. 약 남용을 막기 위해 수용자들에게 ‘치료를 위한 약이 아닌 이상 장기 복용이 필요하지 않다’는 내용의 교육을 했다. 약은 한 달씩 장기 처방하기보다는 가능하면 5일씩 끊어서 지급했다.

그는 수용자들에게 B형 간염 백신을 접종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도 했다. “그들이 사회에 돌아가 보균자 역할을 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해서”라고 최씨는 말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인권위에서 수용자들에게 B형 간염 백신을 접종하라는 권고가 내려와 현재는 수용자가 원할 경우 교도소에서 백신을 구매해 맞을 수 있다. 최씨는 “인권위에 의해 추진됐지만 제가 가졌던 문제의식이 큰 방향에서 잘못된 게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최씨는 교도소 측의 허락을 받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교육을 의뢰하기도 했다. “교육 후 생각보다 많은 수용자들이 장기기증 서약을 했어요. 비록 나쁜 짓을 해서 이곳에 있지만 죽어서는 남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 의외였어요.”

세부지침이 없어 야근 수당을 받을 수 없었던 공중보건의사들의 초과근무 수당도 최씨가 교정본부에 치열하게 요구한 끝에 이제는 전국 모든 교정시설 공중보건의사들에 적용됐다. 수용자의 의료처우개선에 기여한 공로로 최씨는 2020년 법무부 장관상을 받았다.

최씨는 지난 4월 서울구치소 근무를 마치고 지금은 서울대학교병원 인턴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교정정신의학’이라는 외국 의학서적의 번역을 준비중이다.

“교정시설에서 일하면서 이공계생이나 의사로서만 봐왔던 세계 밖의 세계를 경험한 것 같아요. 사회를 보는 눈이 많이 넓어졌고요. 향후 중독환자들을 위한 사회운동을 하고 싶어요. 중독환자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의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최세진씨가 순천교도소와 서울구치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보낸 3년의 기록을 담은 에세이 <진짜 아픈 사람 맞습니다>(어떤책).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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