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 피해자 고통 느끼려 한겨울 차디찬 맨바닥에서도 그렸죠"

안관옥 2021. 10. 2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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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여순사건 73돌 특별전 여는 강종열 작가

초대작 ‘여순사건’을 완성한 강종열 화백. 안관옥 기자

“가장 역설적인 방법으로 인간이 존엄한 존재임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

서양화가 강종열(70)씨는 19일 여순사건 73돌을 맞아 특별전을 여는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강씨는 오는 11월18까지 한 달 동안 전남 여수시 덕충동 여수박람회장 국제관에서 <존엄, 여수의 해원> 주제로 전시를 연다. 지난 5년 동안 그린 ‘멈춰진 시간’, ‘동백에 눕다’, ‘침묵의 나날들’, ‘진실은 살아 있다’ 등 작품 100여점을 선보인다. 입술을 어둡게 처리한 ‘얼어붙은 입’이나 눈·입·귀를 뭉갠 ‘트라우마’ 등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유가족의 아픔을 그림으로 묘사해낸 수작들로 꼽힌다.

전시장 가운데 가로 14.5m, 세로 1.9m의 초대형 유화 작품 ‘여순사건’을 배치했다. 이 작품은 1948년 일어난 여순사건의 현장을 되살려낸 듯한 1000호 크기의 대작이다. 피카소가 1937년 스페인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게르니카’(1937)의 두 배에 이른다. 그는 “다른 작품은 중심작인 ‘여순사건’을 위해 준비한 부분들”이라며 “5년 전부터 구상에 들어갔고 3년 동안 매달려야 했다”고 말했다.

가로 14.5m, 세로 1.9m의 초대형 유화 작품 ‘여순사건’

한국판 게르니카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여순사건’은 당시의 서사·장소·인물·상처를 압축해 어두운 분위기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 앞에 서면 한눈에 전체를 조망하기 어려운 거대하고 압도적인 벽화처럼 느껴진다. 작품 안에서 식어가는 자식을 부둥켜 안은 어미의 오열과 총부리 앞에 양손을 번쩍 든 여인의 당혹을 비롯해 불타는 집에서 황급히 도망치는 양민의 공포, 후미진 바닷가에서 학살된 뒤 불태워진 주검의 원한 등이 서늘하게 다가온다.

“그림 속에 있는 이들과 대화하려고 애썼다. 그들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 겨울에는 불때지 않은 차디찬 맨바닥에서, 여름에는 모기가 그악스런 열려진 공간에서 작업을 했다. 심지어 총탄을 맞고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내 주검을 ‘사살된 남자’라는 화제로 그려보기도 했다.”

15m 한국판 게르니카 ‘여순사건’ 등
5년 동안 제작한 100여 점 선봬
내달 18일까지 여수박람회장에서
“고향 여수 역사 피할 수 없는 숙명
진정한 해원은 인간 존엄 되찾기죠”

국내외 개인전 100차례 ‘동백의 작가’

여수 출신인 그는 지난 2016년 고향의 역사를 피해갈 수 없다는 ‘숙명’을 깨달았다. 유년시절 어머니께서 나지막이 들려주시던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이 이야기들을 남기라는 말씀이셨구나 생각했다. 종군기자 칼 마이던스가 찍은 사진들을 찾아봤고, 사건 자료들을 들추며 예술적 상상력을 동원했다. 40대 때 만났던 ‘게르니카’의 인상을 떠올리며 여순의 비극을 알리는 대작에 구상했다.

강종열 화백. 안관옥 기자

여순의 역사를 하나하나 되살려내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머릿속에 장면이 떠오르면 목탄으로 재빨리 스케치하고, 흑백의 선들을 유화로 다시 살려냈다. 붓칠은 가해자에겐 칼날처럼 날카롭고, 피해자에겐 깃털처럼 부드럽게 나아갔다. 이미 그린 장면들도 숱하게 바꾸고 고치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는 제작 과정에서 ‘도대체 무엇을 그리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했다. 그는 작업을 잠시 내려놓고 숙고에 들어갔다. 어느 순간 여순의 진정한 해원과 희망은 인간의 존엄을 되찾는 것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그는 ‘여순사건’의 중심에 나무십자가 아래서 군인과 주민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두손을 맞잡는 모습을 배치했다. 이어 좌우에 이들을 격려하는 촛불을 그리고 일화와 서사를 이어갔다.

“작업할 때 악몽에 시달리고, 몸무게가 줄어들고, 대상포진에 걸리는 등 탈진상태에서 발버둥을 쳤다. 이름을 쓰고 작품을 마쳤을 때 까닭없이 눈물이 흘렀다. 밤새 한없이 울고 또 울었다. 그날로 압박감에서 벗어났는지 홀가분하고 편안해졌다.”

그는 “처참하게 돌아가신 분들은 역사 속 한 줌의 흙이 되었지만 이 그림 속에서 영원히 기억되리라 믿는다”며 “이 전시가 국가폭력으로 인간의 존엄을 훼손당한 모든 분들께 위안과 치유를 드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동백의 작가로 알려진 그는 동서미술상, 순양예술상, 대한민국 미술인상, 장리석상 등을 받았고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도 지낸 원로다. 여태껏 프랑스 이탈리아 등 국내외에서 개인전 100차례, 단체전 600차례를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그의 작품은 로마교황청의 바티칸성당, 필리핀 대통령궁, 동티모르 대통령궁, 워싱턴 시립은행, 국립현대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등에도 소장되어 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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