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연 작가 "꼰대 영감 대신 멋진 아버지 그리고 싶었죠"

임근호 입력 2021. 10. 25. 17:55 수정 2021. 10. 26.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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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처럼 아버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멋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1997년 겨울,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계신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썼어요. 그러다 깨닫게 된 건 이 아버지가 꼭 나만의 아버지는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가장 좋아하는 소설로 꼽은 그는 "독자들이 '이 작가의 다음 소설은 언제 나오지?' 하고 기대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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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 추는 남자'로 혼불문학상 받은 허태연 작가
등단작..동화같은 소설
67세 굴착기 기사가 주인공
20년 전 쓴 글보며 변신 다짐
"다음 소설은 언제 나오지..
기대할 수 있는 작가 되겠다"


“저처럼 아버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멋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1997년 겨울,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계신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썼어요. 그러다 깨닫게 된 건 이 아버지가 꼭 나만의 아버지는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제11회 혼불문학상을 받은 허태연 작가(39·사진)는 수상작 《플라멩코 추는 남자》(다산책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플라멩코 추는 남자》는 동화 같은 장편소설이다. 주인공은 은퇴를 결심한 67세 굴착기 기사 허남훈. 집에 들어서자마자 ‘여보, 나 밥 줘’라고 소리치고, 중고 굴착기를 사러 온 청년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전형적인 ‘꼰대’다.

그런 그가 20여 년 전 죽다 살아난 뒤 썼던 ‘청년일지’를 다시 들여다보며 변화를 다짐한다. ‘청결하고 근사한 노인 되기’ ‘스페인어 배우기’ ‘플라멩코 배우기’ 등 남은 생애 동안 이룰 과제를 정한다. 그리고 여러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깨닫는다. 은희경 작가 등 심사위원들은 “가족에 대한 위로가 장점으로 읽혔다”며 “무엇보다 작품의 가독성이 좋았다”고 평가했다.

이 소설은 작가의 등단작이다. 대학에서 글쓰기를 공부하고, 몇몇 공모전에서 상도 받았지만 등단의 꿈은 오랫동안 실현되지 못했다. 장편 과학소설(SF)을 3년 동안 붙잡고 고쳐 쓰기를 반복했지만 좋은 성과가 없었다. 《플라멩코 추는 남자》는 지난 3~4월 두 달 만에 완성했다. 그는 “문학성 있고 깊이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방해가 됐던 것 같다”며 “이 소설은 뱃속의 아기를 위해 즐겁게 쓰려 했다”고 밝혔다.

주인공 허남훈은 작가의 아버지 이름이다. 그의 아버지는 42세에, 작가가 16세일 때 세상을 등졌다. 그는 “어릴 땐 아버지가 내 인생에서 중요한 존재인지 몰랐다”고 했다. 사이가 좋지도 않았다. 나이가 들고 결혼하면서 아버지의 빈자리가 점점 크게 느껴졌다. 언제부턴가 소설을 쓸 때 아버지를 계속 생각하게 됐다. 그는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잘 모르지만 이렇게 소설 속 주인공으로 살아나신 것만으로 제게는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책은 동화처럼 쉽게 읽힌다. 큰 갈등도, 나쁜 사람도 없다. ‘꼰대 영감’이 갑자기 ‘멋진 영감’으로 변하는 부분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여기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됐다. 허 작가는 “세상에 좋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지만 실제로 멋진 어른, 아버지를 많이 만났다”며 “일부러 좋은 아버지, 멋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없던 작가는 성인 남성을 불신했지만, 학교에서 만난 훌륭한 선생님들 덕분에 믿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청년일지는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옛날 각오를 되새기게 하는 한편 주인공의 젊은 시절을 들춰낸다. 청춘일지를 통해 주인공이 옛날에 한 번 결혼했다는 점, 전처와의 사이에 딸이 하나 있다는 점 등이 드러난다. 허 작가는 “도서관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그림책 만드는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어르신들에게 자서전을 그림책으로 만들어보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 소설 속 청춘일지로 이어지게 됐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했다는 허 작가는 앞으로도 장편소설만 쓸 계획이다. 한 문장 한 문장 공 들여 써야 하는 단편과 달리 장편은 구조가 느슨해도 이야기의 힘으로, 캐릭터의 매력으로 독자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가장 좋아하는 소설로 꼽은 그는 “독자들이 ‘이 작가의 다음 소설은 언제 나오지?’ 하고 기대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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