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맞춤형 공약..韓은 'YES' 獨은 'NO'

입력 2021. 10. 2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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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의 정치 읽기]
지난 10월 6일(현지 시간) 올라프 숄츠 독일 사회민주당 총리 후보가 승리 연설을 하고 있다. <AFP>
대선을 앞둔 요사이 각종 여론조사가 쏟아진다. 여론조사가 때로는 상이한 결과를 보여주지만, 대략 현재 추세를 알 수 있다는 차원에서는 의미가 있다.

여론조사를 바라볼 때, 몇 가지 주의할 내용이 있다.

여야 모든 대선 후보를 나열한 상태에서 차기 대통령 적합도를 묻는 문항에서는 역선택이 개입될 여지가 상대적으로 작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선택하지 않고 상대 당 후보 중 한 명을 역선택할 경우, 자신이 원하는 후보 지지율이 떨어지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진영 후보 중 어떤 후보가 해당 진영에서 가장 적합한 후보인가를 묻는 항목에서는 ‘부담 없이’ 역선택을 할 수 있다. 모든 후보를 나열한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는 A후보와 B후보 차이가 10% 이상 나지만, 특정 진영 내 대선 후보 적합도에서 역전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다. 물론 역선택을 통해서도 득을 볼 수는 있다. 역선택이든 뭐든, 일단 특정 항목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밴드왜건 효과를 통해 전체 지지율이 상승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른바 세대 간 정치 의식 격차다. 한마디로 세대별로 지지 정당 혹은 지지 후보가 다르다는 얘기다.

지금도 일부 후보는 자신에 대한 2030세대 지지가 탄탄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정당은 정당대로 선거 때면 어김없이 세대별 공약을 준비하고 각 세대에 접근하려 애쓴다. 이런 ‘세대 맞춤형 공약’은 효과가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세대별로 그들만의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당 문제가 특정 세대만의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청년 실업 문제만 봐도, 이는 분명 2030세대 문제지만, 부모세대인 5060세대에도 해당된다. 자식이 취업을 하지 못해 부모가 계속 자식을 부양해야 한다면, 이를 부모세대의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나. 대학 등록금도 마찬가지다. 대학 등록금 문제는 분명 20대의 문제지만, 동시에 20대 대학생 자녀를 가진 부모의 문제다. 이렇듯 대부분 사회적 문제는 세대를 관통하는 문제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세대별 맞춤형 공약’을 운운하는 경우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렇다고 외국에서 세대별로 투표 성향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독일 선거를 봐도 그렇다.

독일은 최근 총선(Bundestagswahl)을 치렀다. 참고로 독일 권력 구조는 내각제다. 독일 연방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한 정당이 내각을 꾸리고, 해당 정당 수반이 수상 자리에 오른다. 독일 총선은 우리로 치면 대선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독일은 다당제다. 따라서 특정 정당이 의석의 절대 과반을 가져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번 독일 총선에서, 지난 16년간 야당에 머물던 사회민주당(SPD)은 25.7%를 득표해 206석의 의석을 확보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원내 제1당이다. 반면 지금까지 집권했던 기독교민주연합(CDU)은 18.9%를 득표해 2위에 머물렀다. 기민련과 사민당 득표 차이가 큰 것처럼 보이지만, 독일 정치 체제에 대해 좀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기민련은 바이에른주를 근거지로 하고 있는 기사련(CSU)과 연방 차원에서는 항상 한 몸으로 움직인다. 당연히 이번 총선에서 기사련이 득표한 표까지 합산해야 한다. 기민련·기사련 연합 득표율은 24.1%다. 사민당과 불과 1.6%포인트 차이다. 이 때문에 이번 총선 결과는, 기민련·기사련 연합 혹은 사민당이 어떤 정당과 연정을 구성하느냐에 따라 누가 권력을 차지하게 되는지 결정된다. 선거가 끝났어도 누가 야당이 될지 아직 모르는 셈이다.

이번 독일 총선 결과는 여러모로 중요한 투표 행태 변화를 보여준다. 이번 선거 이전까지는 구동독과 구서독 지역 투표 성향이 확연히 달랐다. 구동독은 극단적 성향의 정당, 예를 들어 극우 성향 정당이나 극좌 성향 정당 인기가 구서독 지역보다 높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런 지역 투표 성향 차이가 많이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구동독 유권자의 우파 성향이 많이 줄고, 이념적으로 극단에 치우친 정당 인기가 조금은 수그러들었다. 반면 세대별 투표 성향 차이는 오히려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70세 이상 고령층에서는 기민련·기사련 지지가 높았던 반면, 25세 이하 젊은 유권자 사이에서는 사민당과 녹색당 지지가 압도적이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한마디로 지역별 투표 성향의 차이는 많이 줄어든 반면 세대 간 투표 성향 격차는 오히려 더 극명해진 것이다.

이는 독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세대 간에 상이한 정치 성향이 존재한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현재 시점으로 보면, 우리나라 젊은 세대와 독일의 젊은 세대가 유사한 이념 성향을 갖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우리나라 2030은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경향도 보이는 반면, 독일 2030은 진보 성향 정당에 대한 지지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공통점이 있다. 독일은 16년 동안 보수 정당이 집권했기 때문에, 그간의 보수 정당 정책에 대한 불만을 가진 젊은 세대가 많았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이른바 ‘진보 정권’ 때문에 발생한 피해에 대한 2030 반발이 보수 정당 지지의 원인이라고 할 때, 결국 권력을 가진 측에 대한 젊은 층의 반발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런 상황에 대한 우리와 독일 정치권 반응이 상이하다는 사실이다.

독일은 우리처럼 세대별 맞춤형 공약을 내놓지는 않는다. 독일 정치권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세대별로 쪼갤 수 없고, 그래서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도 세대별로 나눠서 제시할 수 없음을 잘 아는 것 같다. 반면 우리나라 정치권은 세대별 맞춤형 공약을 내놓겠다고 야단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독일 정치권은 상대적으로 보여주기식 정치를 하지 않고 대신 문제를 진지하게 숙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우리 정치권은 일단 보여주자는 식으로,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남발하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권에 대한 신뢰, 더 나아가 사회적 신뢰에서 파생되는 사회적 자본에 관한 문제로 파급된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 자본 정도는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 자본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뢰다. 2020년 기준 대한민국 내에 존재하는 불신 정도는 세계적으로 봐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2020년 세계경제포럼(WEF) 평가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제경쟁력은 세계 13위 수준이지만, 사회 자본 면에서는 78위였다. 그만큼 사회적 자본이 약하고 신뢰가 형편없다는 의미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우리 국민이 정치권을 향해 바라는 것은 산적한 현안에 대한 진지한 접근, 그에 기반한 진정성 있는 고민일 것이다. 공약(空約)에 그칠 소리만 남발한다고 해서 우리나라처럼 높은 민도를 자랑하는 국민이 속아 넘어갈 리 만무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31호 (2021.10.27~2021.11.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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