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한국건축문화대상-일반주거부문 대상] 맹그로브 숭인

양지윤 기자 2021. 10. 2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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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 청년 위한 '코리빙'
맹그로브 나무 같은 안식처
개인별 취향 고려 이동가구 배치
복도엔 변기·샤워실 갖춘 워터팟
'짧지만 잦은 스침' 위한 동선 꾸며
‘맹그로브 숭인’의 동측 전경 모습. 회색 외벽의 6층짜리 코리빙 하우스인 맹그로브 숭인에는 24가구가 입주했다.
[서울경제]

1인 가구 비중이 처음으로 40%대를 넘겼다. 예전에는 보통 ‘가구’라고 하면 부모와 그 자녀들로 구성된 3~4인 가구가 떠오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고령화와 더불어 결혼 연령 상향, 비혼율 증가 등 사회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나홀로 가구가 가장 흔한 가구 형태로 자리매김했다. 1인 가구가 그야말로 대세가 되면서 1인 가구를 위한 주거 형태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문을 연 ‘맹그로브 숭인’도 그 중 하나다. 맹그로브는 아열대나 열대의 해변에 자라는 나무다. 맹그로브의 뿌리는 조개나 굴, 가재 같은 해양 생물의 안식처가 되고, 맹그로브 숲은 퇴적물을 가둬 산호초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다양한 생물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고마운 나무에서 이름을 따온 맹그로브 숭인은 서울에서 홀로서기를 하는 청년들을 품어주는 안식처다.

서울 지하철 6호선 창신역 4번 출구로 나와 골목을 따라 걷다보면 회색 외벽의 6층 짜리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총 24가구의 주거공간과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들로 구성된 맹그로브 숭인이다. 이 곳은 밀레니얼 세대 1인가구를 위한 코리빙(co-living), 즉 공유 주거 하우스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부동산 가격 폭등장 속에서 서울에서 홀로서기를 하는 청년들이 적은 예산으로 택할 수 있는 주택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역과 가까울수록, 새 집일수록 불어나는 보증금·월세는 사회 초년생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청년들이 마음 놓고 살 곳이 없어져버린 요즘, 맹그로브 숭인은 청년 주거에 대한 오랜 고민을 거쳐 탄생했다. 청년들이 감당할 수 있는 금액으로 서울 도심 내 쾌적한 나만의 공간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맹그로브 숭인은 청년 1인 가구 주거 형태의 대안을 제시한다. 각자의 상황에 맞춰 가구 형태와 거주 기간을 선택할 수 있으며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1인용 헬스장, 요가룸 등 청년의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공간도 게획됐다. 기존의 셰어하우스가 갖는 프라이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적 공간과 공유 공간도 완전히 분리했다. ‘혼자 있고 싶지만 때로는 함께이고 싶다’는 청년들의 심리를 반영한 것이다.

맹그로브 숭인의 개인실(스튜디오 타입) 내부 모습. 붙박이가 아닌 이동 가구로 꾸며져 언제든 가구 배치를 변경해 방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맹그로브 숭인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이 됐던 아이디어는 바로 ‘짧지만 잦은 스침’이다.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과도한 부담감 대신 스치며 눈인사를 교환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보자는 의도 하에 공간들이 계획됐다. 그 방법 중 하나로 개인 방에 두는 가구와 시설을 공용 공간으로 옮겨 거주자들의 공유 기회를 높였다. 이를 통해 개인 공간을 넓히고, 공용 공간의 활용도도 높였다는 평가다.

이런 아이디어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바로 ‘워터팟(water pod)’이다. 이 공간은 마치 콩깍지에 들어있는 콩알처럼 생활편의 시설을 한 곳에 모아뒀다는 의미를 가진 공간이다. 설계자는 변기·세면대·샤워실을 상자 모양의 공간에 넣어 각 방 사이의 복도에 배치했다. 그 주변으로 순환 동산을 꾸며 거주자들이 스치며 만나는 장소가 되도록 했다. 양치질을 하고 거울을 보기 위해 거주자들은 아침과 저녁에 워터팟 주변으로 모인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 등 자연스럽게 스치며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각자의 방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단조로운 복도의 풍경에서 탈피하고, 물을 쓰는 공유 시설을 한 곳에 모아 효율을 높이려는 의도도 담겼다. 또 햇빛이 잘 드는 남쪽에 복도와 계단실을 둔 것도 이런 짧은 스침이 일어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골목에서 보면 계단실의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거주자의 활기가 느껴지고, 밤에는 전등이 켜지면서 마을의 등대 역할을 하게끔 했다.

맹그로브 숭인을 관통하는 콘셉트인 ‘짧지만 잦은 스침’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인 워터팟(water pod). 변기·세면대·샤워실이 포함된 상자 모양의 워터팟을 각 방 사이 복도에 배치해 거주자들이 서로 마주칠 수 있는 순환 동선을 꾸몄다.

개인 방은 붙박이 없이 이동 가구로만 꾸몄다. 가구 배치 변경을 통해 방의 분위기를 손쉽게 바꿀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다. 입구에 수납장과 싱크대가 결합된 생활 서비스 존을 만들고 침대와 책상을 창가로 배치해 작은 공간에 안정감을 줬다. 6층의 방은 두 개의 침실이 하나의 물 쓰는 공간을 공유하는 형태로 계획됐다. 커플이나 친구가 함께 사용할 수도 있고, 혼자 살 경우 한쪽 방을 침실로, 다른 방을 업무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일과 삶의 변화, 새로운 형태의 동기 등 변화하는 주거 요구에 발맞추기 위한 시도다.

서로 다른 청년들이 어울려 살도록 하는 맹그로브 숭인의 아이디어는 이미 숭인동에 담겨있는 어우러짐의 정서를 반영했다는 것이 설계자의 설명이다. TRU 건축사사무소는 “과거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서민 동네였던 숭인동과 가까운 동묘 벼룩시장에는 중고 만물상들이 모여있다. 뒷골목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앉아 고향의 음식을 나눠먹는다”며 “과거와 현재, 우리와 세계가 뒤섞인 이곳에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커뮤니티 하우스, 맹그로브 숭인이 들어선 것”이라 말했다.

TRU건축사사무소는 이어 “맹그로브 숭인은 1인 가구 청년들을 위한 대안 주거를 만드는 것도 목적이었지만 청년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시작됐다”며 “하나의 개인으로서 자신에게 맞는 주거 방식을 찾아내고,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경험을 통해 자신들의 시대에 맞는 ‘코-패밀리(co-family)'를 이루는 계기가 되도록 하는 것이 이 집의 최종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번 건축문화대상에서 맹그로브 숭인이 일반주거부문 대상을 차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심사위원들은 “맹그로브 숭인은 청년들이 감당할 수 있는 주거비용을 제시하는 동시에 쾌적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며 “시대의 흐름와 청년들의 요구를 접목했다는 점은 가치있는 시도다. 이 작품이 대상을 받음으로서 1인 청년 가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더 다양하고 의미있는 주거 유형이 제안되길 기대한다”고 높이 평가했다.

양지윤 기자 y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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