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 권리선언이 나오기까지

한겨레 입력 2021. 10. 25. 16:56 수정 2021. 10. 25.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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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란 누구인가? 주변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학교수를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한국 사회에서 교수는 권력계층이고 그러므로 연구자는 모두 특권층인 것처럼 보이기 쉽다.

특정한 집단이나 분야의 이해관계를 넘어 모든 연구자가 차별받지 않고 착취당하지 않고 안전하고 평등하게 가치 있는 지식 생산 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연구자 스스로 자신을 정의하고 권리와 책무를 선언한 것이 연구자 권리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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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정보라|한국비정규교수노조 조합원

연구자란 누구인가? 주변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학교수를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자기 논문에 자녀를 공저자로 표기해서 발표한 교수들, 지위를 악용해서 대학원생들의 연구비를 갈취한 교수들, 시간강사에게 계속 고용을 빌미로 갑질을 자행하는 교수들 등등을 떠올릴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한국 사회에서 교수는 권력계층이고 그러므로 연구자는 모두 특권층인 것처럼 보이기 쉽다.

연구비를 갈취당하는 대학원생도 연구자다. 갑질을 당하는 시간강사도 연구자다. 이런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는다. 연구자는 연구라는 노동을 수행하여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이다. 생산하는 지식의 종류에 따라서 즉각적인 상용화가 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인문학과 기초 자연과학 분야 대부분의 연구는 십년, 이십년, 혹은 그 이상 장기적인 투자를 해야만 성과가 나올까 말까 하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연구를 하려면 자료가 필요하다. 인문학의 경우 책이 기본이니까 장서가 갖추어진 도서관이 필요하다. 자연과학 분야의 경우 장비나 도구가 갖추어진 실험실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구자가 월급 받아 먹고살아야 연구를 계속할 수 있다. 그러니까 대학 등의 연구교육기관 입장에서 봤을 때 돈은 계속 들어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할 만한 성과는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저 사람들은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인가 싶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연구자들은 생활불안과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대학에 입학해서 등록금을 낼 학생 수 자체가 줄어서 많은 대학들이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다. 교수를 채용하지 않거나 아예 학과가 폐쇄되는 경우도 많다. 시간강사들은 불가능한 수준의 연구업적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그런 업적을 이루어도 일자리 자체가 없다. 대학원생들의 경우는 더 참담하다. 졸업을 할 수나 있을지, 졸업하면 대체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답이 안 나온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는다. 그러면 학문의 맥이 끊긴다. 후속 연구를 할 사람이 없으니까 후속 세대를 가르칠 교수자의 수요도 점점 줄어서 일자리가 없어진다. 악순환이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지식의 위기로 이어진다. 돈이 안 된다고 아무도 연구를 하지 않으면 지식과 기술로 부가가치를 창조해야 살아남는 이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우리는 역사의 흐름을 역행하여 스스로 선택한 무식쟁이의 길로 달려가게 된다. 왜 한국이 노벨상을 타지 못하느냐면 당장 눈에 보이고 돈이 되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연구 분야는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구자의 권리, 연구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의 생계와 존엄, 그리고 학문연구라는 행위 자체의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은 국가의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다. 연구자 권리선언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특정한 집단이나 분야의 이해관계를 넘어 모든 연구자가 차별받지 않고 착취당하지 않고 안전하고 평등하게 가치 있는 지식 생산 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연구자 스스로 자신을 정의하고 권리와 책무를 선언한 것이 연구자 권리선언이다. 다양한 분야에 속한 여러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최대한 적확한 언어로 최대한 포용적인 선언문을 작성하기 위해 고심했다. 국내외 많은 연구자분들의 지지와 참여를 부탁드리며, 연구자 권리선언에서 제시한 내용들이 제도적이고 정책적인 변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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