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절실한 건 잃어버린 일상의 회복

한겨레 입력 2021. 10. 25. 16:46 수정 2021. 10. 2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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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와 마주한 가족의 삶 연쇄기고 _2
박분남씨의 아들이 지난 5월31일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앞에서 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사단법인희망씨 제공

[왜냐면] 변정윤|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활동가

무릎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 중이던 지난해 6월1일, 박분남씨는 며느리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며느리는 ㄱ사 물류센터 구내식당에서 외주업체 소속 조리원으로 일했고, 1년 만에 급성심근경색으로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분남씨는 수술 뒤 움직이지 말라고 한 의사의 말은 따를 수가 없었다. 아들이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격일로 일하는 상황에서, 초등학생 아이 셋을 두고 가족 곁을 떠난 며느리의 빈자리를 어떻게든 메꿔야 했다. 아침 7시 아들 집에 도착해 손주들에게 아침밥을 먹이고 등하교를 도왔다. 분남씨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집에, 엄마는 아니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사고 뒤 분남씨가 손주들과 함께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엄마를 잃은 아이들은 말수도 줄고 웃지도 않았다. 특히 첫째는 집에 오지 말라며 분남씨를 밀어냈다. 그는 “‘왜 그러니’라고 물어보면 대답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는 손주 옆에서 같이 울었다”며 “아이들을 밝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고 했다.

왕래가 없었던 친척들과 몇차례 만나면서 아이들은 웃음을 조금씩 찾아갔다. 아이들은 최근에 부쩍 엄마와 놀러 다녔던 얘기, 김밥 싸줬던 얘기를 자주 한다고 분남씨는 전했다. 가끔 거리를 지나다가 엄마와 함께 가는 아이들을 자꾸 쳐다보거나, 엄마 품이 그리운지 아침에 일어나라고 깨우는 분남씨에게 응석 부릴 때는 왈칵 눈물이 쏟아지기도 한다.

아들과 손주들은 산재 상담을 하던 노무사의 도움으로 작년 7월부터 ‘근로자건강센터’에서 심리 상담을 받았다. 손주들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것도, 밝아지고 말수가 늘어난 것도, 지속적으로 상담을 하면서 가져온 변화였다. 센터의 존재를 몰랐을 때, 아들이 개별로 알아보니 상담 1회에 50만, 60만원을 달라는 곳도 있었다고 했다. 분남씨는 “어른은 둘째 치더라도 어린아이들한테는 이런 (심리 상담) 지원이 꼭 필요하다”며 “복지센터에 문의해봐도 아들 월급이 (지원 기준보다) 많아서 안 된다는 대답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족들을 지원 기관과 연계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주들 걱정은 조금 덜었지만 아들에 대한 염려가 늘었다. 분남씨는 “아이들이 있어 간간이 웃기는 하지만, 아들에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아들은 사고가 발생하고 1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회사를 상대로 거리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7월 뙤약볕을 온종일 견디고 돌아온 아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변했다. 허리디스크 통증으로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을 이루었다. 밥도 입에 대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분남씨도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가족들이 마음껏 슬퍼하고 애도할 시간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했기 때문이다.

아들은 며느리의 부재로 수입이 반토막 났지만 한부모가족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여성가족부 및 천안시 저소득 한부모가족 지원은 4인가족 기준 소득 인정액이 중위소득 52% 이하, 즉 한달 수입이 253만5671원에 미달하는 경우에 가능하다. 아이 셋을 부양하는 아들의 월급은 이 기준을 넘는 것이다. “요새는 (아이들이) 학원을 안 다니면 친구도 없고 친구와 대화도 안 된대요. (그렇지만 아이들과) 학업이 안 맞고, 물가도 비싸서(어려움이 있어요). 장을 볼 때 둘째 아이가 ‘할머니, 많이 사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나왔어요?’라고 해서 제가 ‘괜찮아. 먹고 싶은 거 사’라고 했더니 ‘안 먹어도 돼요’ 그러더라고요.”

또 분남씨는 주변 사람들이 측은하고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하다는 걸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전화로 며느리 문제가 해결됐는지 물어오거나, 1인시위를 하는 아들에게 ‘엄마 없이 애들 키우는데 힘들지 않으냐’고 말하는 지인들의 마음은 알지만 당사자들을 힘들게 만드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지금 그에겐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누는 주민들과의 일상적인 대화와 웃음이 큰 위로가 된다. 분남씨는 “동네 통장님이 주민센터 문화프로그램을 함께 하자고 하면서 소소하게 사는 이야기를 한다”며 “아들도 (주변 사람들과) 그럴 수 있기를, 손주들은 지금처럼만 자라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자기 자리를 찾아가다 보면 조각난 가족들의 마음이 하나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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