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한국건축문화대상-사회공공부문 대상] 제정구 커뮤니티센터

진동영 기자 2021. 10. 2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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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치장 대신에 박공지붕
'가짐 없는 큰 자유' 철학 담아
내부도 재료 본연의 모습 살려
관람객 위한 세심한 공간 눈길
제 선생 공동체적 삶의 축약본
제정구커뮤니티센터는 제정구 선생의 고향인 경남 고성군 대가면의 대가저수지 자락에 자리잡았다. 주위로 둘러싼 나무숲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차 울창해져 갈 것이다.
[서울경제]

‘가짐 없는 큰 자유’. 도시빈민을 위해 일생을 투신한 인권운동가 고(故) 제정구 선생의 철학을 축약한 말이다. 1972년 서울 청계천 판자촌에서 도시빈민운동을 시작한 이래 그는 평생을 판자촌 주민들의 삶과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다. 선생은 1999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후대는 그의 애민 정신을 기리고 있다. 지난 4월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에 준공된 ‘제정구 커뮤니티센터’는 삶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던 제 선생의 공동체적 삶의 축약본과 같다.

‘제정구 커뮤니티센터’는 대가저수지에 접해 있는 대가저수지연꽃테마공원 내 있는 작은 문화공간이다. 제 선생의 고향이기도 한 고성군은 산과 바다가 만나는 지리적 특징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품은 곳이다. 선사시대 및 소가야 문명 유적 등 역사적으로 풍부한 문화유산을 담고 있는 고장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수려한 자연경관 속 지역 쉼터로 마련된 공원 안에 센터가 자리 잡았다. 센터는 연면적 450㎡ 규모로 지상 1층짜리 아담한 건물로 전시실과 북카페, 강당, 교육실을 갖췄다. 건물은 중간이 연결된 두 채로 구성됐고 저수지 방향으로 두 건물 사이에 작은 정자가 있다.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삼각형 형태의 우뚝 솟은 탑은 묵상을 위한 공간이다. 선생이 기원하던 바른 세상을 향한 염원을 관람객들이 되뇔 수 있는 곳이다.

다소 투박하고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 건물은 제 선생의 삶을 투영하기 위한 설계가 기초가 됐다. 화려한 기술이나 치장보다는 정신이 깃든 건물이 될 수 있도록 그의 내면의 정신이 흐르는 건물을 추구한 결과다. 건축가는 “선생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흐르는 존엄성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집착했다. 그런 분을 기억하는 집이라면 보다 근본적 건축이어야 한다고 여겼다”고 소개했다.

두 채의 건물 사이에는 중정이 마련돼 관람객들이 여유롭게 저수지를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가운데에 마련된 가운데가 뚫린 정원에는 제 선생의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두 채의 건물을 떼어놓고 보면, 외형은 단순한 박공모양 형태로 길게 뻗은 모습이다. 인간의 내면에 집착했던 제 선생을 기리는 건물이라면 가장 단순한 형태의 근본적 건축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선생은 언제나 연대의 의미를 소중히 여긴 사람이다. 그래서 단독 건물보다는 두 채가 나란히 선 모습으로 놓여졌다. 한 채였으면 가려졌을지 모를 대가저수지의 풍경은 두 건물 사이로 시야가 트이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내비친다.

두 채의 건물 사이 마당에는 더욱 더 단순한 형태의 박공 지붕 모양의 정자가 있다. 정자 안에는 작은 벤치 하나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사람들을 언제나 환대했던 제 선생이 살아생전 모습처럼 동상으로 남아 방문객들을 반긴다. 위치상 정반대편인 입구 마당 쪽에 위치한 묵상용 탑은 선생이 늘 기원하던 ‘바른 세상을 향한 염원’을 기리는 장소다. 정원 외에도 제 선생의 동상은 곳곳에 마련돼 있다. 선생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자 미술가 임옥상 선생에게 부탁해 설치했다. 건축가는 “어떤 동상은 방문객을 환대하는 모습으로, 어떤 동상은 깊은 사색의 모습으로, 혹은 기도하는 모습으로 곳곳에서 선생을 만나게 된다”고 했다. 방문객들은 센터를 둘러보는 동안 실제로 제 선생을 만나 교감을 나눈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소박하게 마련된 추모의 공간들은 작지만 몇 채가 어우러진 작은 마을처럼 기능한다. 그리고 그 옆에 조성된 외부 공간들과 함께 공간에 대한 다양함을 연출하게 된다.

건물은 검소한 형태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붉은 색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건물 외관에 사용된 재료는 부식성을 강화한 강판인 ‘내후성강판’인데, 쉽게 말해 표면에 녹을 발생하게 하는 제품이다. 준공 후 5년 동안 천천히 녹이 슬고 그 이후에는 녹슨 피막이 내부의 철을 영구적으로 보호한다. 자연이 녹을 부르고 그 녹이 건물을 영구적으로 유지·관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비용도 발생하지 않는다. 건물은 앞으로 5년 가량 나이를 먹는 동안 겉을 감싼 피막의 색이 점점 변해갈 것이다. 이 시간 동안 건물은 마치 흐르는 시간을 기록하는 듯 서서히 변하면서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질 것이다. 건축가는 “마지막에는 암적색으로 변하고, 오래도록 남는 ‘기억의 장치’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검소한 외관과 마찬가지로 내부도 재료 본연의 모습 그대로 검박하게 설계됐다. 내부는 대부분 콘크리트 재료가 그대로 노출된 형태로 꾸며졌는데, 검소하지만 세련된 느낌을 준다.

건물이 천천히 녹이 슬며 세월을 기록하는 동안, 주변의 테마공원도 점차 울창한 숲으로 변해갈 예정이다. 공원 내에서 센터보다 먼저 조성된 테마공원은 나무가 부족한 상황이어서 센터 조성과 함께 숲을 조성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지역 수목이면서 비교적 빨리 자라는 백합나무를 급히 구해 100그루를 심었다. 지금은 나무의 줄기도 비교적 가늘고 간격도 넓은 편이어서 조금은 허전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무가 자랄수록 숲도 점차 울창해지고 시간에 따라 변해갈 것이다. 건축가의 표현을 빌자면 “제 선생의 집 뿐 아니라 제 선생의 숲을 설계한 것”이라는 의미다.

건물 곳곳에 풍성한 추모의 의미가 담겼지만 기능적으로는 주민들과 방문객이 마음 편히 오갈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건물 내부는 전시실과 북카페, 강당, 회의실 등이 마련돼 있다. 단순하고 검소한 느낌의 외벽과 마찬가지로 내부 또한 콘크리트 재료 본연의 모습으로 꾸며져 있는 등 검박한 모습이다. 건물은 대가저수지를 바라보며 주변으로 아름다운 산세를 품은 생태공원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결국 건축물은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이 소통하고 경험하는 공간으로서의 가교 역할을 맡는다.

건축가는 이 건물이 비록 작지만, 내면의 존엄성을 느낄 수 있도록 ‘가짐없는 큰 자유’처럼 기능하길 바랐다. 건축가는 “물신에 사로잡혀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우리의 내면에 흐르는 존엄성을 다시 듣도록 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권유하는 시설이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진동영 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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