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사람과 마주할 때 어떻게 해야하나요

한겨레 2021. 10. 2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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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월간 풍경소리]

사진 픽사베이

1. 나의 느낌 그리고 생각 심지어 생각하는 기능인 이성까지도 객관화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 있음을 인식하며 살고 있는가? 바로 그 인식이 의식이라 불리는 ‘알아차림’이겠다. 이 ‘알아차림’이 삶의 순간을 영원으로 이끌고 ‘옹근 지금 여기’로 나를 데려다준다. 그걸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경험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앎이 나의 과거 기억과 함께 ‘다시 앎’의 영역으로 진행되면서 나의 앎은 진정한 삶의 한복판에서도 집중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나의 의지 아닌 주어지는, 보여지는 대로 사는 삶 말이다. 내가 무엇을 하려 하지 않아도 ‘그분’께서 이끄시는 삶, 굳이 우리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無爲의 삶 아니겠는가? 爲無爲로 구체화되며 반복되는 삶 말이다.

아내가 식사하면서 묻는다. “여보. 내가 상대하기 힘든 사람이 있고, 상대하기 편한 상대가 있어요. 상대하기 힘든 사람은 불편하고 부정적인 기운이 일어나서 몸도 마음도 굳어집디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의 대답. “받아들여 봐요. 불편함과 부정적인 그 상태를 받아들이라는 거예요. 상대하기 힘든 사람에게 집중하지 말고 내 몸과 마음의 상태에 집중해 봐요. 그것이 경험인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나아질 거예요. 나도 연습 중인데 쉽지는 않지만 계속 하다 보면 이건가 싶을 때가 있어요.”

이어지는 아내의 질문. “무엇을 위해서 그래야 하죠? 행복? 마음의 평화?” 순간 아내의 진지한 표정에 멈칫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한다. “행복이나 마음의 평화라는 것이 나의 마음 상태가 고요할 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경험인데 이것을 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아무리 얘기해도 머리로 이해하긴 쉽지 않을 거예요. 경험하면서 발생하는 억울함이나 부자연스러움 등을 받아들여 스스로 그것을 옹글게 경험하는 방법밖에는. 그런 일이 생기면 남편한테 얘기해 줘요. 밥 식어요. 밥 먹읍시다.”

뭔가를 기억하고 그 기억이 이것이었구나 라고 다시 확인하는 과정, 그것이 remember라 했다. 에고의 경험, 본질적 앎의 과정이 아닌 머리의 단순한 기억. 그런데 그 기억이 조물주의 사랑 안에서 다시 기억의 과정으로 나에게 되돌아올 때는 감탄이 되고 감사가 되며 앎의 맛을 경험하게 되는 영적 기쁨이 된다. 아내와 함께 경험을 나누며 동행하고 있음이다. 감사한 대화다.

2. <풍경소리> 독자 모임 참석차 순천역 도착. 자허 선생님 안내로 97번, 98번 버스를 기다렸다. 4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

어머니 계신 익산에도 강경에서 출발하는 50번 버스는 1시간에 1대다. 오랜만에 기다림에 대한 경험이 반가워 오겠지 하며 기다리고 기다린다. 옆에 계신 할머니께서 어디 가냐 물으신다. ‘사랑어린학교’에 갑니다. 할머니께서 그러신다. “1시 40분에 오는 버스인데 빼먹은 거 같어. 다음은 2시 40분 차인디…” 1시간 더 기다리기로 했다. 사랑이 어린 학교에 가는데 기다림과 여유 없이 되겠는가? 감사한 배움이다. 여러 대의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보내며 내가 앉은 의자에 많은 사람들이 교대하며 앉고 일어서고를 반복한다.

1시간쯤 지났을까?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부채를 여러 개 들고 오시더니 할머니들께 나눠 주신다. 그리고 얘기를 꺼내신다. “저는 경기도 파주에서 왔어요. 30초만 기도해 드리면 안 될까요? 저의 기도는 죽어서 지옥 가지 않도록 해 달라는 기도이거든요. 짧게 할 수 있어요.” 할머니들의 대답. “됐어요. 저는 괜찮아요. 교회 더 열심히 다닐게요.”

길 따라 멀어지는 아주머니를 보고 할머니 한 분이 옆에 계신 할머니에게 그러신다. “멀리서도 왔네. 근디 조금 이상한 교회를 댕기는 거 같어. 나는 절에 댕기지만 그냥 교회 다닌다고 혔어. 에고, 더운디 고생허네.” 옆자리에 계신 할머니들은 부채를 하나씩 들고 계신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주신다. ‘죽어서 지옥에 가지 않을 수 있을까? 살아서 지금 겪는 세상이 지옥인데…’

2시 40분에 98번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본 밖은 분명 지옥은 아니었다.

3. 色, 受. 想, 行, 識. 다섯 글자를 불교에서는 五蘊이라고 한다지? 육신과 정신을 표현하는 요소.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라 부르기도 한다지? 識은 앎이란 것일 텐데… 지식이라 해도 될 테고… 신명기 4장 12절을 읽는데 야훼께서 모세를 통해 전하는 내용 중 이런 표현이 언급된다. ‘너희는 말씀하시는 소리만 들었지 아무런 모습도 보지 못했다. 다만 소리가 있을 뿐이었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경험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알아가는 것을 넘어서 울림과 떨림의 차원을 성서에서 ‘소리’로 표현된 것이라 생각한다면?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그 의미 역시도 울림과 떨림 곧 우리의 생각 속에 고정화된 몸, 만져지는 육체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느낌이나 기운까지를 일컫는 그런 의미로 새긴다면? 육신인 생명체 그리고 소리의 울림과 떨림.

五蘊의 작용을 작용으로 받아들이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말씀 곧 울림과 떨림의 차원으로 우리의 삶속에서 가까이 경험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영적 세계로의 진입. 이 차원이 되면 온통 울림과 떨림 그리고 말씀 아닌 게 없다. 어떤 소리로 나에게 들려올 것인지, 어떤 말씀이 생명이 되어 나와 함께 하는지의 결정과 선택은 나의 몫인 셈.

비가 내린다. 단비다. 빗소리와 빗방울이 나의 눈과 감각을 거쳐 흐른다. 온 대지가 생명력으로 활기를 찾는다. 비와 내가 다르지 않음을 알아차리면 구름이 보이고, 바다가 보이며, 더운 여름의 끝이 보인다. 참으로 감사한 경험이다.

4. 근무하는 학교의 보건 선생님, 진로 상담 선생님과 함께 차를 마신다. 두 분 모두 60세가 넘으신 교육 현장의 원로교사이시다. 두 분은 삶을 바라보는 방식 즉 견해가 서로 다르고 교육자로서의 철학도 다르지만 함께 꽃을 가꾸고 학생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신다. 후배 교사의 한 사람으로 따르고 존경한다. 대화를 자주 나눈다. 최근 대화 중에 요즘 내가 진행하고 있는 톨스토이라는 작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수학 교사가 톨스토이라는 러시아의 대문호를 연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셨다. 진로 상담 선생님은 진로 상담교사로 맡은 업무를 담당하시기 전에 수학 선생님이셨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신 모양이다.

도스토엡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소설에 수학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톨스토이의 작품도 그러한가를 물으신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란 소설 속에는 수학에서 다루는 ‘무한’의 개념에 대한 톨스토이의 생각이 들어 있다. 소설 속에 직접 구현해 냈다. 거북이와 아킬레스의 경주로 잘 알려진 제논의 역설도 다뤄지고 있는데, 무한의 역설 속에 담긴 문제를 이성과 논리로 해결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작품 속에 그려 내고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톨스토이의 생각도 함께 나눴다. 승자 중심의 역사 기술,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의 관점에 따라 바라보는 측면의 일부분을 기록하다 보니 역사 속 개인의 다양한 경험과 실재를 모두 기록할 수 없다는 점은 수학에서의 무한에 대한 개념 인식과 비슷한 접근 방법이라고 보았다. 수학을 통해 설명하는 방식을 톨스토이 스스로 이해하고 이를 그의 책을 통해 기술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학 교사의 입장에서 학생들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이 그 관점에 놓여 있기에 수학 교사로서 톨스토이 연구의 방향을 잡았다는 것을 설명 드렸더니 공감하신다. 배움은 그렇게 선생님들과 함께 차를 나누며 스스로 스며들고 있었다.

글 박진호/수학교사 출신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 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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