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AI 법률사무소](42)방납의 혁신, 폐단 그리고 플랫폼 빅테크

2021. 10. 2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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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으면 저승사자 옆에 국세청 직원도 기다린다. 그만큼 세금은 무섭다. 조선시대 세금에 공납(貢納)이 있다. 나라에 필요한 물건을 가구 기준으로 할당·납부 의무를 지운다. 영광 굴비, 전주 한지 같은 특산물이다. 미리 할당된 품목·개수를 채워야 하는데 흉작이나 자연재해가 들면 지키기 어려웠다. 부족하면 사서 내야 했고, 달아나면 친족이나 옆집에 전가됐다.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를 해결한 것이 방납(防納)이다. 방납업자가 백성에게서 수수료를 받고 수공업자·농부·어부로부터 특산물을 구입해서 대납한다. 특산물 재배·제작 과정을 관리하니 품질이 좋아졌다. 보관, 운송 등 물류까지 갖춰 상하거나 흠이 생길 일도 없다. 백성은 직접 재배하거나 만드는 불편을 덜고 저렴한 수수료로 공납을 해결할 수 있었다. 지방관은 방납업자가 좋은 품질의 특산물을 대납하고 물류까지 대신하니 편해졌다. 방납은 백성, 특산물 생산자, 정부를 연결하는 플랫폼 혁신이었다.

그런데 좋은 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더 큰 고통이 시작됐다. 지방관은 품질을 핑계로 방납업자의 특산물이 아니면 받지 않았고, 뇌물까지 챙겼다. 방납업자는 백성이 내는 수수료를 수백배 올리고 특산물 생산자를 착취해서 폭리를 취했다. 이 폐단을 없앤 것이 대동법(大同法)이다. 토지 보유량 기준으로 세금을 쌀로 받은 뒤 돈으로 바꿔서 특산물을 구입하는 제도다. 그것도 지주 양반의 반발로 전국 확대·시행에 100년이 걸렸다.

플랫폼 빅테크 규제가 세계적 화두다. 미국은 온라인 선택과 혁신법 등 5개 법률안을 발의했다. 유럽은 디지털시장법 등 제정을 추진했다. 중국도 플랫폼 경제 반독점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미국은 왜 규제할까. 플랫폼 빅테크는 데이터 수집과 인공지능(AI) 활용을 위해 회원사·고객 등 외부자원 의존도가 높고, 그들의 자발적 동의를 얻어 사업을 한다. 단기수익보다 장기성장을 목표로 소비자 후생을 높인다. 그러니 법을 위반해도 경미한 수준이다. 손실을 감수하고 규모를 키우니 반독점금지법으로 독과점 문제를 해소하기 어려워졌다. 정부의 기능은 미국 국민 3억명에 미치는 데 불과하지만 플랫폼 빅테크는 세계 수십억 시민을 가입자로 하여 영향을 미친다. 플랫폼 빅테크가 공공 분야에 진출하면 정부의 역할을 뺏을 거란 우려도 있다. 미국 플랫폼 빅테크가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엔 변화가 없다. 규제해도 미국의 글로벌경제 이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른 나라가 함께 규제해도 미국 플랫폼 빅테크보다 그 나라 기업만 손해다. 규제 부담이 덜한 이유다. 유럽은 왜 규제할까. 미국 플랫폼 빅테크에 지배를 당한 시장에서 유럽 기업·시민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불가피한 선택이다. 중국을 보자. 체제 특성상 규제를 걷어내기도 쉽고 신설하기도 쉽다. 규제받는 플랫폼 빅테크는 대부분 내수 중심인데 거침없이 소신을 밝히거나 기업의 이익을 우선하는 등 정부의 심기를 흔든다. 물론 반도체, 전기차 등 국익에 중요한 글로벌 산업은 확실히 보호한다.

우리는 어떤가.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규제 법안을 내놓고 있다. 코로나19로 급성장하고 있는 플랫폼 빅테크는 기존 규제만으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섣불리 규제했다간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 국내 경쟁 환경 및 글로벌 산업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플랫폼이 정부조달, 법률시장 등 공공 분야에 진출하는 것은 위험하다. 공공성을 효율성·경제성으로 대체하면 공익을 침해할 수 있다. 특히 변호사는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의뢰인을 위해 싸워야 한다. 플랫폼에 종속되면 그것이 가능할까. 이길 만한 소송에서 지는 억울한 의뢰인이 나올지 모른다. 방납의 폐단이 21세기 대한민국에 다시 나와선 안 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국가지식재산위원) sangjik.lee@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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