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보다 벗어나기 힘든 '여성=화장'이라는 편견[플랫]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입력 2021. 10. 25. 15:42 수정 2021. 10. 2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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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자 비행사들은 화장을 하면 기분 전환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근무중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라고 우주선에 화장품을 실어 주었습니다.”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비행사이자 베테랑 우주비행사 왕야핑(王亞平·41). 그는 지난 16일 선저우 13호에 탑승해 우주 정거장 건설에 참여하는 첫 여성 우주비행사가 됐다. 두 명의 남성 우주비행사와 함께 우주로 향한 그는 앞으로 약 6개월 동안 기술 검증과 각종 장비 설치, 과학 실험 등을 수행할 예정이다.

왕야핑은 한때 마오쩌둥(毛澤東)이 “하늘의 반은 여성이 떠받치고 있다”며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유도하던 중국에서 우주로 나간 두 번째 여성이자, 우주 유영을 하는 첫 번째 중국 여성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그는 지구 밖으로 떠나면서도 뿌리 깊은 성차별 문화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10월 14일 중국 주취안 위성 발사 센터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왕야핑이 발언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1980년 산둥반도 옌타이시에서 태어난 왕야핑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장거리달리기 선수로 지역 경기에 나갈 정도로 운동신경이 좋았다고 한다. 그는 1997년 고등학교 졸업 후 길림성 장춘시에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항공대학에 진학했다. 2003년에 중국 최초의 우주인 양리웨이(楊利偉)를 태운 선저우 5호가 발사되는 걸 보고 우주비행사의 꿈을 꾸게 됐다. 우주에 발을 디딜 꿈을 키워가던 그가 우주비행사로 뽑히기 전까지 공군으로서 날았던 순 비행시간은 1600시간에 달했다.

그는 2010년 중국이 처음 뽑은 여성 우주비행사 훈련생 10명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우주로 나간 중국의 첫 여자 우주비행사가 되진 못했다. 리우양이 2012년에 중국의 첫 여성 우주인이 되고 나서 1년이 지나서야 기회가 찾아왔다. 왕야핑은 2013년 드디어 선저우 10호를 타고 우주로 나간 두 번째 중국 여성이 됐다. 그리고 2020년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한 번 더 찾아왔다. 중국의 우주 정거장 ‘톈궁’을 건설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할 비행사 18명 중 유일한 여성으로 선발됐고 지난 16일 우주로 향했다.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샐리 라이드. 그는 1983년 챌린저호에 오르기 전 “우주에서 브래지어나 화장을 할 것이냐” “일주일 정도 비행을 하는 데 탐폰이 100개 정도 필요한가” 등의 질문들에 시달렸다.게티이미지

1963년에 소련이 첫 여성 우주비행사를 지구 궤도 밖으로 쏘아 올린 이후로 지금까지 우주로 나간 여성들은 총 65명이다. 5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시선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1983년 미국의 첫 여성 우주비행사 샐리 라이드는 챌린저호에 오르기 전 “우주에서 브래지어나 화장을 할 것이냐” “일주일 정도 비행을 하는 데 탐폰이 100개 정도 필요한가” 등의 질문들에 시달렸다. 소련의 두 번째 여성 우주비행사 스베틀라나 사비츠카야는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후 남성 우주비행사로부터 “당신을 위해 앞치마랑 부엌을 마련해 뒀다”는 환영인사를 받았다.

왕야핑 역시 중국의 우주 개척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지만 여성차별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녀가 처음에 훈련생으로 뽑힌 이유는 “기혼 여성이라 신체적·정신적으로 더 성숙해서 힘든 훈련에 잘 적응할 것”이란 당국의 판단에서였다. 여성 우주비행사를 처음 뽑았을 당시 국가 기관에선 “여성 우주비행사를 우주로 보내면 팀의 정신적 안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평을 내놓았다.

중국국가항천국(CNSA) 소속 팡지하오는 “여성 우주비행사가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근무할 수 있도록 무독성 화장품을 마련했다. 우주에서도 화장을 하면 기분 전환이 되지 않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온라인 상에서도 성차별적인 평이 만연했다. “무중력 상태에서 작업하는 우주유영 같은 임무를 여성이 해내긴 어려울 것”이란 우려부터 “우주에서 어떻게 머리를 감고 손질할 것이냐”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김혜리 기자 harry@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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