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 제작자 이태원 대표 별세..영화계 애도 행렬

김지혜 2021. 10. 25.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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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장군의 아들', '서편제', '취화선' 등을 만들며 한국 영화 발전에 이바지해온 태흥영화사 이태원 전 대표가 세상을 떠난 가운데 영화계와 영화계 인사들의 애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24일 태흥영화사는 "이태원 전 대표가 이날 오후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이태원 대표와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 감독은 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함께 영화 작업을 하며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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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장군의 아들', '서편제', '취화선' 등을 만들며 한국 영화 발전에 이바지해온 태흥영화사 이태원 전 대표가 세상을 떠난 가운데 영화계와 영화계 인사들의 애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24일 태흥영화사는 "이태원 전 대표가 이날 오후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이태원 전 대표는 지난해 5월 낙상사고를 당해 약 1년 7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다. 빈소에는 과거 고인과 함께 '충무로 삼총사'로 불렸던 임권택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을 포함해 임상수 감독 등이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또한 최민식, 신현준 등 생전 고인과 함께 영화 작업을 했던 배우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이태원 대표는 1938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아픔의 시간을 보냈다. 건설업을 하다가 1959년 '유정천리' 제작을 시작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 영화의 흥행 실패로 한 동안 영화계를 떠나 있다가 1973년 경기도 의정부에서 극장을 운영하며 다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1984년 부도 직전의 태창영화사를 인수해 태흥영화사로 사명을 바꾼 후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과 수입에 나섰다.

임권택 감독과의 인연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태흥영화사는 1989년에는 임권택 감독의 '아제아제 바라아제' 제작해 주연 배우 강수연이 한국 배우 최초로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이후 '장군의 아들', '서편제', '춘향뎐', '취화선' 등을 연이어 제작하며 임권택 감독과 환희의 순간을 보냈다. '서편제'는 개봉 당시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그 해 최고 흥행작 자리에 올랐고, '취화선'으로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임권택)을 받아 한국 영화의 새 역사를 썼다.

이태원 대표와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 감독은 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함께 영화 작업을 하며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에 기여했다.

마지막으로 제작한 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2004)이다. 이 대표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고인은 1990년대에는 한국영화제작자협회 회장을 맡았다. 또 대종상 영화발전공로상(1994), 은관문화훈장(2002), 백상예술대상 특별상(2003) 등을 수상했다.

이태원 대표의 발인식은 26일 오전 10시 진행되며, 장지는 분당메모리얼파크다.

ebada@sbs.co.kr

<사진 = 영화진흥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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