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칼럼] 페이스북, 너 누구냐?

이정규 비즈니스 IT컬럼니스트 2021. 10. 2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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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디넷코리아=이정규 비즈니스 IT컬럼니스트)페이스북의 비도덕적 경영행태에 대한 프랜시스 하우겐(Frances Haugen)의 내부고발이 IT업계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그가 미국 상원에서 증언한 내용에 따르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소셜미디어가 청소년에 미치는 해악을 무시하였다.

또한 수익 우선의 알고리즘으로 사회적 양극화를 부추기고, 가짜정보와 여론 조작을 방관했으며, 대테러 모니터링을 등한시함으로써 사회 안전에 위협을 주었다. 이번 일을 나름 풀어 본다면, 용기 있는 내부고발자(whistleblower)가 “너 누구냐?”하며 기업 정체성에 대한 답변을 요구한 사건이라 해석한다.

정체성이란 존재할 이유와 관계된다. 그러므로 기업에게 “너 누구냐?”하며 묻는 일은 결국 회사의 존재이유를 따지는 것과 같다. 공동체에게 주는 이익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적지 않다면 이처럼 기업의 정체성은 도전 받게 된다.

(사진=씨넷)

정체성은 개인과 그룹의 개념에 차이가 있다. 개인에게 정체성이란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게 만드는 특성이다. 이를테면 멘탈 모델, 행동패턴, 경험이력, 자의식과 자존감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것을 모두 포괄한다. 정체성에 혼돈이 생기면 중음신(中陰身)처럼 떠돌며 삶을 제대로 이어갈 수 없다.

반면에 기업 정체성은 집단적으로 공유되는 유사성에 관련된다. 이러한 유사성은 구성원 간에 합의된 명분이나 공유된 비밀, 소속감, 역할 활동과 같은 것이며, 제복과 위계, 집단에서만 사용되는 언어, 관행이나 예식, 공유된 기업 철학과 직업윤리 등으로 표출된다. 기업 정체성이 혼란에 빠지면 이탈하는 직원이 늘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직원 이직률은 기업의 계속사업을 예측하는 훌륭한 측정지표이기도 하다.

정체성은 긍정과 부정의 가치가 공존한다. 하우겐의 이번 고발은 개인의 긍정 정체성이 기업의 부정 정체성과 충돌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개인과 조직의 정체성이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하우겐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개인이 소속 회사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려는 시도는 자신의 인생을 거는 일과 같다.

개인이 건강하게 살려면 삶 속에서의 정체성이 분명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안에서 기업의 건전한 정체성은 조직 존립의 뼈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은 영원 불변하지 않으며,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천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정체성과 사업을 영위하는 사회 환경은 절대로 따로 떼어내서 설명할 수 없다.

생활환경이 각박해지면 사람이 이기적 모습을 보일 수 있듯이, 경쟁이 심화되거나 시장환경이 열악해지면 기업도 탐욕적으로 바뀌기 쉽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 기업의 초심은 사라지고 이윤 극대화의 욕심만 남게 된다. 아마도 영속기업이 어려운 이유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조직의  정체성을 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주어진 환경이 사람이나 공동체에게 부정적인 힘으로 작용할 때, 자기 정체성이 어떻게 변화하는 지에 대한 유명한 사회심리학 실험이 있다. 바로 스탠포드 대학의 감옥 실험(Stanford prison experiment, 이하 SPE) 이다. SPE 실험은 원래 1971년 8월14일 토요일부터 2주간으로 계획되었다. 日當 14불의 신문광고에 혹하여 공모한 70명의 대학생 지원자 중에서 마약이나 전과 같은 결격사유가 없는 중산층 출신의 남자 대학생 24명을 선별하였다. 이들을 동전 던지기를 통해 죄수와 간수 각 12명으로 나누었다.

대학의 심리학과 빌딩 지하에 마련된 실험공간은 최대한 감옥과 같은 모양새로 만들었다. 감옥 설계는 17년간 옥살이 경험이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았으며 복종 않는 죄수를 세워서 가두는 Hole이라는 특별 감옥까지 설계하였다. 이후에 감옥에서 벌어진 간수와 죄수와의 대결, 죄수에 대하여 갈수록 악랄해 가는 간수의 학대, 고문, 성적 수치심 자극 등의 사건은 전과정이 테이프로 녹화되었다. 계속되던 실험은 담당교수가 정신을 차린 끝에 6일만에 조기에 종료되었다.

한편, 미국은 알카에다 무장단체가 감행한 2001년 9.11 테러의 군사적 보복의 연장으로 이라크와 전쟁을 벌인다. CIA는 의심스러운 사람을 바그다드 서쪽 32키로미터에 위치한 아브 그라이브Abu Ghraib 교도소에 수감한다. 이곳에서 미군에 의하여 자행된 참혹한 포로학대 사건은 간수들이 자발적으로 촬영한 1천여장의 사진이 외부로 노출되면서 전세계적인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발생시점은 다르지만 두개의 사건은 마치 감옥소 평행이론과 유사하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SPE 실험을 주관했던 짐바르도 Philip Zimbardo 교수는 36년이 지난 2007년 두 감옥의 사례를 모티브로 하여 루시퍼 효과Lucifer Effect라는 책을 펴냈다. 책에서 짐바르도 교수는 감옥에서 인간의 성격을 결정하는 힘을 아래의 세가지로 설명했다.

* 개인의 기질(individual disposition): 섞은 사과가 누구냐?

* 외부적 상황(external situation): 어느 것이 섞은 사과가 든 상자이냐?

* 시스템의 힘(systemic power): 누가 이 나쁜 사과상자를 만들었냐?

짐바르도는 3개의 힘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시스템이라 선언한다. 물론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도 남보다 더욱 악행을 일삼은 섞은 사과(간수)는 존재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누구든 그러한 시스템에 들어간다면, 아무리 선하고 원칙에 충실한 개인도 입을 다물고 방관하거나, 수동적이라도 협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의 근원은 나쁜 시스템이고, 그 시스템을 설계한 사람에게 궁극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시스템을 누가 설계하고 수정할 수 있는가? 회사의 대표이다. 그러기 때문에 기업에서 벌어진 일탈에 대하여 오너가 직접 설명해야 하며, 책임을 몇 명의 썩은 사과(임직원)에게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수하 직원이 자신의 힘으로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스템적 폭력의 재발 방지를 위해 짐바르도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슈퍼히어로’ 교육을 제안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세대는 언제나 젊은 세대였다. 기득권 세대가 방관하거나 디자인한 폭력적 시스템을 향해 ‘호루라기 부는 사람’을 양성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들으니, 세상을 바꾸는 교육의 힘에 대하여 동서양의 인식이 같은 듯하다.

페이스북에 대한 정체성 이야기가 너무 나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온라인 게임사인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성희롱, 국내 소셜미디어 기업의 검색 순위조작, 직장내 괴롭힘, 골목상권 파괴와 같은 사건은 기업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하게 만든다. 기업이 사람보다 재무적 성과를 앞세울 때 시스템의 폭력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아브 그라이브 사건을 “일부 썩은 사과” 이슈로 축소하려 했다.  그러나 이런 일을 만든 “섞은 사과가 누구냐?”라고 물을 때가 아니다. 잘못된 시스템이 유발하는 폭력은 해당 조직이 폐망의 문지방 위에 서있다는 표징이다. “모두 내 탓입니다” 하고 대표가 나설 시점이다. 조직이 괴물이 되기 전에 고장난 시스템을 멈추고, 조직 정체성을 원복 시켜야 할 “Moment of Truth(진실의 순간)”이다.

이정규 비즈니스 IT컬럼니스트(dominic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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