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마음 따뜻했던 '츤데레 쌤'.. "한번 더 찾아뵐 걸" 후회

기자 2021. 10. 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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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어느 시기가 가장 즐거웠냐고 물으면 고등학교 시절이라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하곤 한다.

명섭쌤은 통상 미술 선생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지금은 버린, 조곤조곤하고 우아하실 거 같은 선입견)의 선생님이 아닌 삼촌 같은, 아니 더 중후한 큰아빠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분이셨다.

졸업하고 바로 전근을 가신 이유로 한 차례 잠깐 찾아뵌 시간이 명섭쌤과의 마지막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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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김명섭 선생님

인생에서 어느 시기가 가장 즐거웠냐고 물으면 고등학교 시절이라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하곤 한다. 마음 잘 맞는 친구들, 쉬는 시간마다 뛰어갔던 매점,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옹기종기 모여 시켜먹었던 매운 떡볶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또 하나의 이유, 바로 감사하고 훌륭하신 선생님들.

담임 선생님도, 주요과목 담당 선생님도 아니었던 미술 과목 김명섭 선생님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계절마다 내 머릿속을 잠시 찾았다 지나가시는 분이다. 명섭쌤은 통상 미술 선생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지금은 버린, 조곤조곤하고 우아하실 거 같은 선입견)의 선생님이 아닌 삼촌 같은, 아니 더 중후한 큰아빠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분이셨다.

대학 입시 성적에 들어가지 않아 상대적으로 덜 열심히 하게 되는 미술 수업을 명섭쌤은 특유의 유쾌함과 소위 말하는 ‘츤데레’ 같은 성격으로 항상 기다려지는 시간으로 만들어 주셨다. 톡톡 쏘는 말투지만 학생들이 조금 더 나은 작품을 완성할 수 있게, 머리 아픈 ‘국영수’의 늪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는 것은 아무리 어렸던 고등학생 때도 다 느낄 수 있었고 충분히 전달받았던 감사함이다.

명섭쌤께 수업 들었던 네 번의 학기 중 어느 한 학기 때다. 그 학기의 실습 주제는 명화 따라 그리기 유화페인팅이었다. 유화페인팅이라는 작업이 마음에 들어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 때까지 미술 학원에 꾸준히 다니며 대회에서 상도 간간이 타오곤 했던, 미술에 대해 나름 약간의 자부심이 있었던 나는 최선을 다해 한 학기를 열정으로 불태워 완성했다. 그렇게 완성된 뭉크의 ‘절규’. 그 학기 실습이 마무리되고, 완성된 절규에 대해 잘했느냐는 나의 물음에 “뭐∼” 하며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으셨던 명섭쌤이었지만, 그날 오후 다른 선생님께 질문하러 찾아간 교무실에서 건너편 선생님께 “이거 진짜 잘했지?”라며 절규를 머리 위로 들고 자랑하시던 명섭쌤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야자’ 시간에 친구들과 찾아간 교무실에서 한 젓가락씩 싸 주시던 편육과 김치, 안 그럴 것 같은데 은근 꼬박꼬박 챙겨주시던 화이트데이와 빼빼로데이의 과자, 이 작은 지면 안에 다 담기지 않는 2년간의 생활….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몇 년이 지나 고등학교 친구들 단체대화방에 명섭쌤의 부고 소식이 올라왔다. 당시에도 술을 좋아하셨는데, 그게 원인인 것 같았다. 하필 장례식이 치러지는 곳이 제주도라서 당장 시간을 비우고 달려갈 수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어린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고 처음 맞는 소중한 사람의 죽음이었다. 졸업하고 바로 전근을 가신 이유로 한 차례 잠깐 찾아뵌 시간이 명섭쌤과의 마지막 기억이다. 모든 이별이 그렇듯 한 번 더 찾아뵐걸, 더 성실한 제자로 남을 걸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가득하다.

나의 가장 열정적이고 활기찼던, 감히 ‘행복’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시기의 한 이유가 돼 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리운 마음을 이렇게나마 전한다고 말씀드리며 이 마음이 하늘에 닿길 바란다.

선생님을 기억하는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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