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년 역사 옻칠의 품질 기준 과학으로 밝혔다

서동준 기자 2021. 10. 2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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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 공동연구팀이 9월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서울 인사동 KCDF갤러리에서 옻칠 연구성과를 담은 전시를 열었다. 이 전시는 지난 6일부터 연말까지 경북 상주 지천옻칠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이어 열린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제공

2019년 국립김해박물관에 보관된 신석기 시대 토기에서 옻의 주성분인 우루시올이 검출됐다. 이 성분은 5000년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됐는데 앞서 전남 여수의 고인돌에서 발견된 옻칠 흔적보다 2500년 더 오래된 것이다. 옻칠에 사용되는 옻나무에서 나온 진은 방수, 방충, 방염 등 외부 물질을 차단하는 효과가 크다. 이런 이유로 제기·공예품·가구 등의 마감재로 지금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전통과학 전문가들은 상당히 일찍부터 한반도에서 옻칠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옻칠 장인들도 옻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특히 어떤 옻이 좋은 옻인지 구분하는 기준은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확립되지 못했다. 한국산과 일본산이 좋고, 중국산이 그보다 못하며 베트남산은 쓰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어림짐작할 뿐이다. 이상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소프트융합소재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최근 광주과학기술원(GIST), 숙명여대, 지천옻칠아트센터와 공동 연구를 통해 옻의 품질을 가늠할 기준을 처음으로 세웠다.

○'우루시올'이 가르는 옻칠의 물성

옻칠은 인체에 무해한 천연도료로 아름답고 수명이 길어 주방용 목제 생활용품에서 전통악기, 팔만대장경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용됐다. 팔만대장경은 각각의 판에 옻칠을 하여 습기로 인한 변형을 방지했다. 공기와 습기로부터 전통악기를 보호함으로써 웬만한 외부 환경조건에도 악기의 음색이 변하지 않고 늘 일정하게 해준다. 무령왕릉의 목제 유품을 비롯한 전통문화재도 옻칠 덕분에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한다. 

옻칠이 돼 있지 않았다면 산화작용으로 부식되고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한 줌의 흙으로 변했을 것이다. 옻칠은 적정한 습기가 없으면 마르지 않으며, 건조된 후에도 습기를 지녀 스스로 습도를 조절한다. 흡착력도 강해 칠이 나무에 스며들어 벗겨지지 않는다. 

연구팀은 옻나무를 구성하는 주성분인 카테콜 분자의 구조가 수종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알아봤다. 그 결과 한국과 중국·일본에 분포하는 옻나무는 15개의 탄소수소 결합체인 ‘우루시올’이 주요 성분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보다 품질이 떨어진다고 알려진 베트남과 타이완 등에 분포하는 검양옻나무는 17개의 탄화수소가 결합한 ‘락콜’이 주성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전체 성분 가운데 우루시올 함량에 따라 옻칠의 물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석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분석 결과를 보면 처음부터 좋은 옻과 품질이 떨어지는 옻이 있는 게 아니었다”며 “각기 다른 물성을 갖고 있어서 용도에 따라 적합한 것을 골라 사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가령 우루시올 함유량이 적을수록 경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반면, 투과도는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도와 접착력이 우수해야하는 식기 등의 생활용품에는 우루시올 함량이 높은 옻칠을, 옻칠을 통해 발색을 극대화하고 싶으면 락콜 함량이 높은 옻칠을 사용하면 된다.

산지에 따라 구분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 연구팀의 결론이다. 중국에서도 어느 지역의 옻인지에 따라 물성이 크게 다르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소비자들이 우루시올 함유량에 따라 다른 물성을 알고 구매할 수 있도록 옻칠 용기에 산지가 아닌 우루시올 함유량을 표기하는 방안은 제안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옻의 물성을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결국 우루시올의 함유량에 따라 달라진다”며 “우루시올 함유량에 따른 물성을 알고 용도에 맞춰 구매한다면 더 원활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 공동연구팀은 옻칠의 물성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최대한의 발색을 할 수 있는 안료와의 최적 배합 조건을 알아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제공

○화려한 색상 내고 말리는 시간 줄일 과학적 방법

옻칠은 고급 승용차, 해저 광케이블, 잠수함에서 최고급 기능성 도료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최근에는 옻칠 전문가들로부터 연구의 영감을 얻고 있다. 이 책임연구원은 “좋은 소재를 만들거나, 소재에 대해 새로 분석하더라도 딱히 어디에 응용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옻칠 전문가들이 여러 제안을 하면서 여러 다른 연구들도 수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 하나가 컬러 옻칠이다. 기존에도 옻에 안료를 5대5 또는 6대4 비율로 첨가해 색을 냈다. 하지만 옻의 장점, 특히 접착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팀은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노란색, 흰색 안료를 각기 다른 비율로 옻칠과 섞은 뒤 발색과 접착력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빨간색 안료는 50%만 혼합해도 접착력에 문제없이 충분한 색을 냈다. 이에 비해 초록색, 파란색, 노란색, 흰색 안료는 70~80% 이상 넣을 경우 접착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확인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단순히 혼합하지 않고 두 가지 재료의 특징을 더 면밀하게 파악해 옻칠의 장점은 유지하면서 개성있고 생기있는 색을 낼 수 있는 컬러 옻칠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GIST 연구팀은 옻칠 작업의 단점으로 꼽히는 오랜 경화시간을 단축할 방안을 알아냈다. 옻칠은 80%의 높은 습도에서 6~12시간의 오래 말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연구팀은 우루시올과 유사한 구조를 갖는 경화제를 개발해 자외선을 쬐면 50% 습도 조건에서 4시간 안에 작업을 끝내는  나노 옻칠 기술을 완성했다. 

옻칠 전문가인 김은경 작가는 “옻칠에 대한 과학적이고 이론적 바탕이 없으면 제품이나 작품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며 “예술가 입장에서 과학이 너무 필요했고 협력을 진행하다보니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부분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학자와 예술가의 협업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내용을 기반으로 향후 우루시올 함유량 기준으로 옻칠 구매가 이뤄질 수 있도록 추진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옻칠의 여러 장점을 살려 산업에도 적용할 방안을 찾을 계획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방수, 방충 등 훌륭한 물성을 한꺼번에 갖춘 옻이 향후 산업적으로도 매우 훌륭한 소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옻칠은 식기 등 생활용품에도 사용할 수 있는 친환경 마감재로도 주목 받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제공

[서동준 기자 bi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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