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야쿠자가 은퇴 후 앞치마를 두르며 벌어진 일 [왓칭]

윤수정 기자 2021. 10. 2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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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칼 들고 앞치마 두른 전직 야쿠자, 주부의 길에 정진하다? '미화'일까 '희화'일까, 넷플릭스 애니 '극주부도'
넷플릭스 '극주부도'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는 어느 아침. 한 남성이 핑크색 앞치마를 두르고 출근하는 이를 위한 아침밥과 정갈한 도시락을 싼다. 이어 아침 빨래와 청소를 마친 뒤 이웃 부녀회 주민들과 동네 운동센터로 향한다. 다이어트용 에어로빅으로 땀을 빼기 위해서다. 저녁에는 마트 찬거리를 할인 가격에 사기 위해 주부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얼핏 봐선 여느 전업주부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상이다. 하지만 이 남성의 ‘전 직장’이 조금 특별하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식칼 대신 사람을 찌르는 칼을 쥐었고, 하루도 몸에 튄 피가 마를 날이 없었던 ‘전직 야쿠자’라면 말이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극주부도’는 이와 같은 발칙한 상상을 이야기의 뼈대로 삼은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일본에서 인기를 끌어 같은 내용으로 드라마까지 제작됐다. 야쿠자 세계의 ‘전설’로 불렸던 남성 ‘다쓰’가 아내 ‘미쿠’와 결혼하면서 전업주부로 변신하며 생기는 일들을 보여준다. 그런 다쓰가 사람을 찌르는 사시미 칼 대신 식칼을 잡고, 야쿠자스러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섬세한 바느질을 완벽히 해내는 반전 모습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남성’ 아닌 ‘야쿠자’ 전업주부

야쿠자 시절 라이벌이자 자신처럼 전직 야쿠자인 토라지로와 자주 아웅다웅 다투는 다쓰.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은 매 에피소드마다 주인공 ‘다쓰’가 한 때 ‘그저 그런’ 야쿠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특히 파이프 하나만으로 상대 조직을 일망 타진해 ‘불사신’이라 불렸던 그의 과거는 현직 야쿠자들조차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이 같은 설정은 애니 속 다쓰의 반전 매력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사실 ‘여성’이 아닌 ‘남성’ 전업주부가 낯선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 올해 초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가정 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국내 남성은 약 19만5000명. ‘여자력(女子力)’이란 단어와 함께 여성의 가사 능력을 중요시했던 일본조차 2015년부터 육아에 전념하는 남성 ‘이쿠맨’이 생겨나 그 숫자가 증가해왔다.

하지만 ‘일반 남성’이 아닌 ‘야쿠자 남성’이 전업주부 일에 몰두하는 모습은 어떨까. 일본식 입묵(이레즈미) 문신을 팔과 등짝에 잔뜩 새긴 채 채소를 손질하고, 곰돌이 모양 쿠키를 앙증맞게 찍어내는 건 여전히 낯선 모습이다. 그것도 만든 음식마다 하트 장식을 꼽고, 다각도로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인증하는 다쓰를 보고나면 요즘 야쿠자들은 조직에 입문할 때 가사 능력을 시험하나 혼란이 오기 마련이다.

◇멀고도 험한 ‘주부의 길’

실제 애니 속에서도 ‘야쿠자 전업주부’ 다쓰를 낯설어 하는 이웃 주민의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전업주부가 되긴 했지만 다쓰는 야쿠자 시절 버릇을 쉽게 버리지 못 한다. 앞치마를 두르긴 했지만 야쿠자 시절 즐겨 입던 검정 양복에 선글라스 차림은 그대로였고, 얼굴에 칼자국도 흉흉하다. 마트에서 ‘밀가루’를 살 때는 마약 밀매를 하는 듯한 말투로 ‘하얀 가루’를 주문해 오해를 사기도 한다.

인상이 험악하다는 이유만으로 경찰들에게 불심검문을 당하는 다쓰. /넷플릭스

가장 큰 걸림돌은 뒷산에 사람 하나 몰래 묻어버릴 것만 같은 험악한 인상이다. 장 보러 가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만 해도 자주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릴 정도다. 현직 야쿠자임을 의심한 경찰의 단속이지만, 이 때마다 직업을 묻는 질문에 “전업주부!”라고 당당히 외치는 다쓰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다쓰 스스로도 전업주부의 생활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며 “주부의 길을 얕보지 말라”고 외친다. 외벌이를 책임지는 아내 ‘미쿠’ 대신 뛰어든 가사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데, 지역 생활경제의 수장인 ‘부녀회장’을 위한 각종 로비 전략까지 펼쳐야 한다. 특히 부녀회장의 가정 방문을 앞둔 날을 마치 조직 두목을 모시던 ‘결전의 날’에 비유하고, 혹시 밉보일까봐 걱정될 때는 땅에 엎드려 조아리거나(도게자·土下座), 새끼손가락을 자르겠다고 설치다가 저지당하기도 한다.

◇임협물, 야쿠자 ‘미화’일까

이런 다쓰의 기상천외한 전업주부 생활을 보다 보면 “현실에도 저런 야쿠자가 있을까?”란 질문이 떠오른다. 친숙하고 가정적인 그의 모습과 달리 일본 사회는 여전히 현직이든, 전직이든 야쿠자가 공포의 대상이자 배척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다수 온천에서 아직까지 몸에 큰 문신이 있는 관광객을 받지 않는 것도, 뿌리깊은 ‘문신 새긴 야쿠자에 대한 공포감’ 탓이다.

다쓰는 종종 손님들에게 자신이 야쿠자 시절 즐겨쓰던 단어들을 직접 만든 오므라이스 위에 붉은색 케첩으로 적어 대접하곤 한다. /넷플릭스

일본 사회에서는 특히 극주부도와 같이 야쿠자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이 ‘현실을 미화한다’며 비판받기도 했다. 1950~60년대 야쿠자들의 행보를 ‘뜨거운 남성들의 의리’로 미화시킨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것이 ‘임협물’이란 장르로 자리잡으며 최근까지도 각종 일본 드라마나 애니에 쓰여 논란이 돼왔다. 대부분이 ‘야쿠자들은 ‘일반인’만큼은 전혀 손대지 않는다’며 정의롭게 묘사하는 형식이었지만, 현실 속 야쿠자는 그렇지 않아서다.

이런 측면에서 ‘극주부도’ 역시 논란의 눈초리를 피해갈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 애니 역시 스스로 작품 소개마다 ‘가정적 임협 코미디물’을 자처하고 있다. 제목의 극주부도는 야쿠자들이 스스로를 ‘협객’이란 의미로 쓰는 ‘극도(極道)’에 주부를 삽입한 것이다. 협객을 하던 야쿠자의 자세로 이제는 주부의 길에 정진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애니는 중간중간 협객과는 거리가 먼 다쓰의 어두운 과거 또한 보여준다. 타 조직원과 칼부림을 일삼거나, 배신자들을 산 채로 바다에 혹은 산에 파묻는 장면들을 말이다.

◇야쿠자 ‘취집(취직 대신 시집)’이 가능해진 이유

다만 이 애니가 과거 ‘야쿠자 미화’ 논란에 휩싸였던 임협물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야쿠자를 ‘희화’의 대상으로도 삼았다는 점이다. 과거 이타미 주조란 한 일본 감독은 호텔 운영을 둘러싼 야쿠자의 실상을 고발한 영화 ‘민보의 여인(1992)’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보복심을 품은 야쿠자들에게 얼굴을 난도질 당했다. 그런데 이제는 비판을 넘어 앞치마를 두르고 경찰의 심문에 고분고분 응하며 하트 모양 주먹밥을 빚는 야쿠자를 등장시킨 것이다.

조직 두목이었던 남편이 죽고 조직원 생계를 책임지려고 마트 아르바이트를 하는 안주인 토리이 히바리(가운데)와 그의 조직원들. 할인 상품에 스티커를 붙이거나 정산 기계를 다루는데 서툴면서도 야쿠자 시절 습관으로 복식호흡으로 손님에게 호통을 내지르는 히바리의 말투가 웃음을 자아낸다. /넷플릭스

이같은 애니 속 야쿠자의 위상 변화는 실제 일본 사회 속 야쿠자의 위상이 변한 영향도 있을 것이다. 일본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야쿠자 조직원 숫자가 7만300명에 달했지만, 지난해 2만5900명으로 36% 감소했다고 한다. 1992년 시행된 폭력단 대책법(폭배법)과 2009년~2011년까지 일본 전국에 완비된 폭력단 배제 조례를 근거 삼은 대대적인 경찰 단속의 결과다. 이 단속으로 일본 야쿠자들은 신용카드 한 장 만드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철저히 사회 구석으로 내몰린 상태다.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야쿠자 조직원들이 100만원을 벌겠다며 멜론 서리를 하거나 슈퍼마켓에서 쌀을 훔치다 검거된 적도 있다.

애니 ‘극주부도’는 ‘다쓰’가 왜 요즘 유행한다는 ‘취집’에 뛰어들게 됐는지 정확히 설명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런 일본 사회의 배경을 감안한다면, 야쿠자 출신으로 일을 구하기 어려운 다쓰가 손을 씻으면서도 생계를 유지하려면 아내 미쿠가 외벌이를 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쓰가 조직원 시절 연을 맺었던 다른 조직원들의 모습은 더욱 노골적이다. 이제는 백수건달이 돼 다쓰에게 세뱃돈을 달라고 징징대는 야쿠자 시절 막내 조직원 마사, 다쓰의 라이벌이자 역시 전설적인 야쿠자로 불렸지만 교도소 출소 후 크레페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토라지로, 조직 두목이었던 남편이 죽고 조직원 생계를 책임지려고 마트 아르바이트를 하는 토리이 히바리. 하나같이 몰락했고, 짠내나는 야쿠자의 모습들이다.

◇일본 야쿠자 갈등은 현재 진행형

분홍색 캐릭터 앞치마를 두른 다쓰. 애니메이션 광이자 오타쿠인 그의 아내 ‘미쿠’는 한 푼이라도 아끼고 절약하려는 다쓰에게 좋아하는 피규어 제품을 사달라고 조르는 일이 다반사다. 사진 속 앞치마도 미쿠가 좋아하는 캐릭터 앞치마를 장착한 모습이다. 모두 야쿠자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다쓰의 모습이다. /넷플릭스

어찌보면 극주부도 속 어색한 다쓰의 전업주부 일기는 향후 일본 내 야쿠자들이 살길을 모색하며 벌어질 각종 모습들을 비유한 것일지도 모른다. 앞치마를 두른 다쓰의 모습이 지난 10년간 극심한 수세에 몰리며 이미지 변신을 꾀했던 야쿠자의 모습을 떠오르게 해서다. 실제 칼 대신 ‘꽃’과 ‘빗자루’를 들며 시민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던 야쿠자 조직의 전례도 있다.

日 야쿠자, 칼 대신 꽃과 빗자루 들다…변신일까 위장일까

다만 야쿠자들이 이웃들과 잘 동화되는 애니 속 모습은 지나치게 희망적인 모습일 테다. 좀 더 현실적인 야쿠자들의 몰락 과정을 그려 호평을 받은 일본 영화 ‘야쿠자와 가족’을 함께 비교하며 시청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멋모르고 야쿠자 들어갔다가...인생 나락 떨어진 한 남자 이야기 [왓칭]

개요 애니메이션 l 일본 l 2021 l 시즌 1개, 10회차

등급 18세 관람가

특징 ‘사람 잡는 칼’ 대신 ‘식칼’ 든 야쿠자의 반전유머

평점 IMDb⭐7.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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