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쌓은 번역 빅데이터로 '오징어게임' K-자막 탄생"
■ ‘번역 글로벌 1위’ 이준희 아이유노 SDI 한국법인 대표
2015년부터 넷플릭스 파트너십
디즈니·아마존 업체와도 손잡아
100개 언어로 年 70만편 작업
간이 녹음실 만들어 직원 협업
번역때 문화적 뉘앙스까지 고민
자막은 ‘제2의 챌린지’라 생각
“전 세계적인 팀워크와 기술력, 그리고 한국 특유의 순발력이 자막 ‘넘버원’을 만든 원동력입니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의 세계적 성공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꼽힌다. 황동혁 감독의 창의적인 스토리와 연출력, 국내 제작사의 노하우와 ‘가성비’를 갖춘 경쟁력, 배우들의 찰떡같은 하모니 등….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될 게 있다. 바로 K-콘텐츠가 해외 팬들에게 전달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번역과 자막의 힘이다. 2000년대 초반 벤처기업에서 출발한 번역 전문회사 아이유노 SDI는 지난 10여 년의 노력 끝에 봉준호 감독이 말했던 ‘1인치 자막의 벽’을 넘어 세계 최고, 최대의 미디어그룹으로 성장했다. K-자막의 전성시대를 연 아이유노 SDI 한국법인의 이준희 대표를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스튜디오에서 만나 글로벌 1위에 오른 비결을 들여다봤다.
“번역에 무슨 기술력이 있을까 하시는데요. 영상 콘텐츠의 번역은 일반적인 문서 번역과는 다릅니다.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하고요. 번역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수많은 케이스 분석을 통해 품질 높은 번역 빅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한 기술력입니다. 그리고 초벌 번역에 쓸 수 있는 인공지능(AI) 번역의 중요성도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아이유노는 DVD 번역회사로 출발해 2005년부터 방송국과 협업하게 됐고 2009년엔 해외 진출을 추진해 2015년 아시아에 16개 지사를 가진 글로벌 회사로 커졌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유럽 최고의 미디어 회사인 BTI를 인수하고 지난 1월엔 미국 최대의 SDI까지 인수·합병(M&A)하면서 명실상부한 1등 기업이 됐다.
SDI까지 인수하면서 전 세계 지사는 67개로 늘어났다. 글로벌 직원의 수는 2500명, 번역과 후반 작업을 하는 프리랜서의 숫자는 3만 명에 이른다. 넷플릭스와는 2015년부터 긴밀한 파트너십으로 협업하고 있다. 디즈니플러스, HBO맥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 전 세계적인 플랫폼 업체와 거래하고 있다. 다루는 언어는 100가지가 넘는다. 에피소드 1시간짜리 기준으로 연간 60만∼70만 편을 작업한다. 글로벌 1위다.
“회사 직원들끼리 수시로 내부 메신저를 활용해 협업합니다. ‘이런 언어 아는 분?’ ‘이럴 때 그 지역의 문화적 애티튜드는?’ 같은 질문을 주고받으며 ‘집단 지성’을 발휘합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평범함에 만족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하다 보면 어느새 문제가 해결될 때가 많습니다.”
‘오징어게임’을 전 세계 80여 개국에 번역해서 보낼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이슬람 문화, 지리적으로 인접해있지만 오랜 적대 관계를 이어온 인도와 파키스탄의 정치 상황 등을 고려한 번역과 자막으로 오류를 줄였다.
“우리 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죠. 어디에 중점을 두고 번역할 것인지를 정해야 합니다. 그 말 그대로 직역할 것인가, 아니면 최대한 창의력을 발휘할 것인가. 그럴 때마다 감독과 제작사, 플랫폼 파트너와 긴밀하게 협의하며 최적화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자막은 제2의 챌린지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만의 특별한 순발력과 철저한 보안 유지도 지금의 K-자막과 아이유노를 있게 한 비결이다.
“한국의 번역 인력이 우수하기도 하지만 매우 신속합니다. 한국어 에피소드 한 편을 영어로 번역하는데 빠르면 2시간 정도, 통상 6시간 이내에 마무리해 딜리버리합니다. 또한 업무의 성격상 보안이 매우 중요한데 이는 업무 매뉴얼과 번역가 테스트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내에서 무선 와이파이를 제한해 보안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넷플릭스가 코로나19로 극장 관객을 흡수하면서 오히려 구독자 수를 늘렸듯, 아이유노도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다.
“자막 넣고 더빙하기 위해서는 번역가, 작가, 엔지니어 등이 스튜디오에서 만나야 할 텐데 코로나19로 여의치 않은 시간이 많았죠. 유럽이나 북미 회사들은 거의 손을 놓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아이덥’ 같은 장비로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참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덥’은 고진일 디렉터가 개발한 조립형 간이 녹음실이다. 조용하게 녹음할 수 있게 공중전화 박스처럼 개인형으로 만들었다.
“번역과 자막에서 누구보다 앞서가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 할 일도 더욱 많아지고 가능성도 커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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