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걸그룹이 노래한 '추억'.. 천년만년 남아 귓가에 맴돈다
■ 주철환의 음악동네 - 김시스터즈 ‘다방의 푸른 꿈’
죽기 살기로 맞붙은 이들에게 가끔 하늘이라도 쳐다보라 권하고 싶은데 그들이 내 말을 들어줄 리 없다. 책이라도 부쳐줄까 살펴보니 ‘천년만년 살 것 같지’라는 질문이 눈에 들어온다. 스님이나 신부님이 붙인 제목 같지만 펼치면 뜻밖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하늘다람쥐, 반달가슴곰, 구상나무, 황조롱이, 산천어…. 사라져 가는 자연의 생명체들과 공생하라는 내용이다. 돌아보니 곤충채집이 방학숙제인 시절도 있었는데 사실 그건 곤충을 죽이는 일이었다. 반면에 노래채집은 노래를 살리는 일이라 보람이 작지 않다.
음악동네 언덕에 시계탑이 있다. ‘8분이 지나고 9분이 오네/ 1분만 지나면 나는 가요’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1968)에서 그대 오기를 기다리는 1분은 ‘불덩이 같은 가슴’으로 묘사된다. 하루는 1440분이다. 김범수는 ‘하루’(2006)에서 ‘저 바람도 매일이 다른데/ 그래도 이 세상에 살고 싶단 행복을 준 건 너무나도 고마웠어요’라고 노래했다. 1년이 지나도 그 마음 여전할까. ‘벌써 일 년이 지났지만/ 일 년 뒤에도 그 일 년 뒤에도 널 기다려’ 브라운 아이즈가 ‘벌써 일 년’(2001)을 발표한 지도 어느새 20년이 흘렀다. ‘그래 지금 힘겹다고 생각하는 날들도/ 언젠가 다가올 날에는 다시 돌아오고픈 시간일 거야’ 봄여름가을겨울이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보여준 해가 1992년이니 이제 ‘2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를 발표할 때가 이른 것 같다.
스케일을 넓혀보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남진의 ‘님과 함께’(1972)엔 세속오계가 아닌 인생사계가 조목조목 나와 있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 꽃을 피우며 가을에 풍년을 맞아야 겨울에 행복하다는 거다. 만약 노래 제목이 ‘돈과 함께’였다면 이루기 힘든 목표다. 음악동네에선 천년도 가뿐하다. ‘천년이 가도 난 너를 잊을 수 없어/ 사랑했기 때문에’(박완규 ‘천년의 사랑’ 중) ‘내 곁을 떠나지 않으면/ 님이여 이 몸 늙어도 천년을 살겠네’(윤시내 ‘천년’ 중) 심지어 천년에 천년을 더한 희구도 있다. ‘그 몸뚱이 하나 발바닥 둘을 천년의 두께로 떠받쳐라 (중략) 팔을 든 채 이대로 또 다시 천년을 더하겠어라’(송창식 ‘토함산’ 중)
노래도 산과 같아서 음악동네엔 천년의 노래들이 지금도 숨을 쉰다.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제목도 단아해서 ‘청산별곡’ ‘서경별곡’이다. 이 노래들의 창작자가 살았던 시기가 태평성대는 아니었을 것이다. 무슨 무슨 난(亂)이 많았다. 그래도 죽지 않고 ‘살어리 살어리랏다’ 다짐했으니 노래의 힘은 대단하다. 가사(악장가사), 악보(시용향악보)를 전해준 이들의 노력도 가상하다.
나는 요즘 예능인문학이란 말을 즐겨 쓴다. 예능도 문학, 역사, 철학과 만나는 교량이 필요해서다.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SBS)와 ‘시대를 바꾼 아티스트, 데뷔의 순간’(KBS1TV) 등을 보며 무수한 자료화면을 그냥 방송사 창고(?)에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거나 팬서비스 차원으로 방출만 할 게 아니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의미부여도 하는 시도가 절실하단 생각이 들었다. 바야흐로 자료가 사료가 되는 순간들이다.
최고는 많아도 최초는 하나다. 한국 최초의 대중가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마음먹고 불을 붙이면 달고나의 부활도 시간문제였음이 ‘오징어게임’으로 입증됐다. 블랙핑크 이전에 펄시스터즈, 그 이전에 김시스터즈가 있었다. 다방 하면 커피 대신 부동산을 떠올리는 젊은이에게 대한민국 ‘최초’ 걸그룹 김시스터즈가 리메이크한 ‘다방의 푸른 꿈’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원곡(1939) 가수는 김시스터즈의 어머니 이난영이다. ‘사랑은 가고 추억은 슬퍼’ 그러나 진심으로 부른 노래는 천년만년 남아 시대와 공생한다.
작가
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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