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성 "보수주의는 보편적일지언정 결코 도그마가 아니다"
■ ‘현대일본의 보수주의’ 낸 장인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현실·이념사이 괴리 극복 노력
日 비판적 보수주의 흐름 조명
“리얼리티 아닌 이론 집착땐
사상적 자폐에 빠지기 쉬워”
진영논리 韓정치현실에 경종
“우리는 일본의 보수를 생각하면 흔히 자민족 중심주의와 배타적 국수주의에 빠진 ‘보수우익’을 떠올립니다. 편협한 원리주의에 집착하는 보수우익에 주목할수록 우리 스스로를 시선의 단순함과 사상의 빈곤함 속에 가두게 되지 않을까 저어됩니다.”
새 책 ‘현대일본의 보수주의’(연암서가)를 낸 장인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지난 22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익 세력이 과거 아시아 침략의 첨병 역할을 했고 지금도 자민당을 지원하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지만, 그들이 일본 보수정치를 움직이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장 교수에 따르면, 현대 일본의 사상계는 오른쪽에 극우, 보수우익, 보수가 포진하고 왼쪽에 마르크스주의자, 진보좌파, 리버럴 진보 등이 자리하는데, 이들은 이념과 현실을 보는 관점, 역사를 생각하고 미래를 구상하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 극우나 보수우익이 보수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현대 일본사회와 일본정치를 지탱하는 보수적 심정과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장 교수는 일본 도쿄(東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국제정치학자이지만, 이번 책에서 한·일 관계를 논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문예비평가인 후쿠다 쓰네아리(福田恒存)와 에토 준(江藤淳), 경제사상가이자 사회비평가인 니시베 스스무(西部邁) 등 3인을 ‘비판적 보수주의자’로 규정하고, 이들의 사상적 행로에 주목할 것을 제안했다. 이들은 1950∼1960년대 ‘민주·안보 공간’(후쿠다), 1960∼1980년대 ‘경제·성장 공간’(에토), 냉전 해체 이후 ‘탈냉전·역사 공간’(니시베) 등 각자가 마주했던 사상 공간에서 현대 일본의 보수 논단을 이끌었다. 장 교수는 “이들은 간혹 ‘보수반동’ ‘보수우익’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보수우익과는 구별되는 비판적 보수지식인이었다”고 평가했다.
“보수우익이 일본의 역사와 전통을 절대시하는 ‘전통주의’에 빠진 것과 달리 이들 비판적 보수주의자는 역사와 전통도 현실의 모순을 깨고 변화하는 데 도움이 돼야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리얼리티(현실)와 비판정신을 놓지 않은 겁니다. 이들은 천황제에 대해서도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인정했지만, 하나의 제도로 바라봅니다. 천황제를 절대시하며 배타적 내셔널리즘에 빠진 보수우익과는 다릅니다.”
장 교수는 “3인의 비판적 보수주의자가 일본 보수의 주류라는 의미는 아니며, 이들은 당대의 사상 공간에서 어느 정도 따돌림받았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이들에게 주목하는 것은 장 교수가 동아시아, 나아가 비서구 사회의 보수주의에 천착해 온 점과 통한다. 이들에 관한 연구가 일본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한국 보수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데도 시사점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장 교수는 앞서 ‘서유견문:한국 보수주의의 기원에 관한 성찰’을 통해 유길준의 보수주의를 조명한 바 있다.
“제대로 된 보수주의를 추구해야 그 사회가 좀 더 안정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의 보수는 현실을 그 자체로 보고 보수적 처방을 내리는 게 아니라 자꾸 이념이나 입장으로 현실을 규정하려 합니다. 이런 점에서 현실과 이념, 현실과 제도 사이의 간극과 괴리를 극복하려 노력한 일본의 비판적 보수주의자들을 음미해 보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 교수는 “보수주의는 보편적일지언정 결코 도그마가 아니다”며 “영국의 보수주의와 미국의 보수주의, 일본의 보수주의가 다 다른 만큼 보수주의 원칙은 신중하고 가변적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앙·독트린으로서의 ‘보수주의(conservatism)’와 기질·태도로서의 ‘보수적인 것(to be conservative)’을 구분하고 후자를 옹호한 현대 영국의 보수주의자 마이클 오크숏을 소개했다. 이는 리얼리티가 아닌 이념이나 이론에 집착하다가는 자칫 사상적 자폐(自閉)에 빠질 수 있다는 장 교수의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이론가들은 자폐하는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해서 이론이 나오는데, 한번 이론이 성립되면 스스로 굴러가면서 현실과 괴리를 보이기 때문이죠. 이론에 갇히는 겁니다.” 이는 주장과 진영 싸움이 난무하는 한국의 현실에 대한 경고로도 들린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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