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세계일주] 부처? 아담? 시바신? 발자국의 주인을 찾습니다

글·사진 김영미 여행작가 2021. 10. 2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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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4개 종교가 숭배하는 聖山, 천국으로 가는 5,500개 계단
스리랑카 스리파다
스리파다 야생보호구역은 여명이 밝아오는 순간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스리파다Sri Pada’ 또는 ‘아담스피크Adam's Peak’라고 부르는 불교성지의 해발고도는 2,243m. 스리랑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이 신성한 산은 스리랑카의 수호신인 사만Saman신이 머무르는 산으로 매년 수천 명의 외국인들과 현지인들은 매우 힘든 등반을 한다. 정상에는 큰 발의 흔적이 새겨진 바위가 있는데, 불교도들은 부처가 스리파다를 세 번째 방문했을 때 남긴 발자국이라고 믿고, 힌두교도들은 춤추는 시바신의 발자국이라고 믿고 이슬람과 기독교인들은 아담이 에덴동산을 떠나라는 말을 듣고 처음으로 지구에 발을 디딘 곳이라 믿어서 아담스피크라고 부른다. 세계 4대 종교의 신도들로부터 은총과 공경을 받는 유일한 곳이다.
4개 종교 모두에게 신성한 곳이지만 불교도들에게는 더욱 중요하다. 많은 불교신자들은 정상에서 일출을 보고 스리파다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5,500여 개의 계단을 맨발로 걸어서 오른다. 심지어는 자기가 사는 곳에부터 맨발로 아담스피크까지 걸어와서 참배하기도 한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평생에 3번 아담스피크에 오르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순례의 계절은 비가 적게 내리는 1월부터 4월이다. 등산로는 조명등이 켜 있고, 사람들은 계곡의 물로 몸을 청결히 하고 밤에 등산을 시작해서 산 정상에 도착해 일출을 기다린다. 동풍이 매우 강하게 불어서 일출과 함께 삼각형의 산용山容을 그리고, 때로는 ‘브로켄의 요괴 현상’도 나타나서 더욱 신비롭다.
호튼역과 델하우지 간을 운행하는 버스는 폐차 직전의 모습이지만 산골을 굽이굽이 지나며 델하우지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아담스피크에 오르는 두 가지 주요 경로는 호튼Hatton과 쿠루비타Kuruvita를 통해 오르는 코스이다. 호튼 경유 코스는 5km로 거리가 짧아서 내국인과 외국인 방문객이 가장 많이 이용하고, 쿠루비타를 경유하는 코스는 아름다운 강이 흐르는 9km 코스로 수정처럼 맑은 물에 몸을 씻고 순례를 시작할 수 있어서 현지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루트이다.
이른 시간부터 줄을 선 덕분에 캔디에서 호튼으로 가는 기차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10여 분 늦게 플랫폼에 도착한 기차는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만큼이나 사람들로 꽉 찼다. 차곡차곡 사람이 채워졌다는 표현이 딱 적절했다. 기차가 레일을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하고 약 1시간이 지나자 시원스럽게 펼쳐진 차밭이 펼쳐졌다. 답답한 기차 안으로 녹차향이 스며들었다.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2시간 반 정도 지나 호튼역에 도착했다. 호튼역 앞에 서 있는 델하우지Delhousie로 가는 버스는 폐차장으로 가야 할 정도였다. 과연 저 버스가 산골을 굽이굽이 지나서 델하우지까지 갈 수 있을까?
부처님의 발자국이 있는 스리파다에 오르기 위해 줄을 지어 오르는 순례객들.
이라세바야를 만나러 가는 길
스리파다 일정은 다른 어떤 일정보다도 빡빡하다. 밤새 아담스피크로 오르는 5,500여 개의 계단을 올라서 정상에 도착해 일출을 본 후 하산해서 숙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음 여행지인 누와라엘리야로로 출발하는 일정이다. 스리랑카 여행을 하면서 잠깐 귀가 얇았던 때가 바로 이때였다. 델하우지에서는 아담스피크 외에는 볼 것도 할 것도 없다는 어떤 여행자의 말에 귀가 솔깃해서 무박산행을 계획하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서 배낭에 밤새 먹을 먹거리, 산지대의 추위를 대비한 방풍재킷, 하산길에 다리의 피로를 덜어 줄 하이킹 폴을 준비했다.
출발하기엔 시간이 일러서 델하우지마을을 구경하러 나갔다. 내가 방문했던 때가 순례시기여서 마을 전체는 순례객들로 북적거렸다. 지금도 이렇게 순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데 밤이 깊어지면 올라가는 길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나의 걱정을 눈치 챘는지 숙소의 호스트가 일출을 보려면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출발하란다. 정상까진 아무리 빨리 걸어도 3시간은 소요될 것이니 정상에서 일출을 보려면 새벽 1~2시쯤 출발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숙소 호스트의 충고에 따라 계획을 수정해 밤 10시에 출발했다. 일찍 정상에 도착하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해님을 맞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동쪽 지평선을 불덩이처럼 뚫고 나오는 극도로 밝고 찬란한 태양의 광채인 이라세바야를 보기 위해 동이 트기 전에 정상에 오른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올라가는 길은 희미하긴 해도 가로등이 켜있어서 랜턴이 필요하지 않았다. 계단길이 시작되었지만 마음도 바쁘지 않았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웃음도 잃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였다. 갓난아기를 안고 온 젊은 부부도 보이고, 걷기도 어려운 부모님을 부축하고 오르는 아들도 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은 계단에 앉아서 아이들의 다리를 주물러 주고 있다. 걷다가 쉬다가 언제 정상에 도착해서 참배를 하고 갈 수 있을까?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평온하고 웃음이 가득했다. 이곳까지 왔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모습이었다.
밤 12시가 지나면서부터 조금씩 정체현상이 시작되더니 급기야 출퇴근 시간의 전철 환승역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내 의지대로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었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도 누구 한 사람 짜증은커녕 큰 소리조차 내지 않았고 먼저 가려고 앞사람을 비집고 올라가지도 않았다. 얼마큼 올라왔는지, 정상은 얼마나 남았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오로지 나만 초조했다. 이러다 일출도 못 보는 것은 아닐까?
한 계단 올라서고 쉬고 또 한 계단 올라서고 쉬기를 계속했다. 더 이상 계단을 오르지도 못하고 정상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단에 갇혔다. 밤이 깊어갈수록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날씨는 추워졌다. 변변한 옷도 입지 않고 맨발로 오르는 순례자들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려갈 수도 없으니 포기할 수도 없는 길. 인내만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순례자와 여행자의 마음가짐은 기본적으로 달랐다. 아주 잠깐씩 계단을 올랐다. 이미 정상에 도착해서 스리파다를 마주할 시간은 벌써 지났다. 드디어 스리파다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 정상이 바로 저긴데. 여명이 산 주변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뿔싸. 스리파다에서 일출은 포기해야겠구나.
내 마음을 그들이 느꼈을까? 내가 외국인임을 알고는 현지인들이 조금씩 움직이더니 길을 내어주었다. 드디어 5,500여 개의 계단을 모두 지나서 일출 최고 명소인 정상의 난간에 도착했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 틈에서 겨우 내 몸을 의지할 공간을 얻었다. 두텁게 깔려 있던 구름 사이로 드디어 붉은빛이 새어나오고, 그 틈새에 해님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그 순간 고요와 적막이 세상을 감쌌다. 가끔 ‘어~’, ‘와~’하는 감탄소리만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숨 쉴 틈도 없이 일출을 사진에 담았다. 단 몇 초만 늦었어도 일출을 만날 기회는 없었겠지. 옆으로 비킬 공간조차 없는 상황에서 나에게 길을 내어준 그분들에게 다시 감사했다. 많은 순례자들은 동쪽 지평선을 불덩이처럼 뚫고 나오는 극도로 밝고 찬란한 태양의 광채인 이라세바야irasevaya를 보기 위해 동이 트기 전에 정상에 오르려고 한다. 쨍한 빛으로 세상 밖으로 나온 해님과 아침인사를 나눴다.
스리파다 종탑의 아래쪽에서 순례객들이 향을 피우고 참배하고 있다.
잠시 순례자가 되다
사원 입구에서 통제를 했다. 일단 신발과 양말을 벗고 사원 안으로 들어섰다. 스리랑카의 모든 사원에서는 신발도 양말도 모두 벗어야 한다. 순례자들이 거치는 제1관문은 종탑이었다. 순례자가 성스러운 산을 오르는 횟수만큼 울릴 자격이 있는 종이 걸려 있었다. 종을 치기 위한 줄이 무척 긴 것은 너무 당연했다.
나는 종을 쳐보려던 마음은 접고 슬그머니 그 자리를 지나쳤다. 부처님의 발자국이 있는 작은 사원은 특별한 시기에만 공개한다고 한다. 굳게 닫혀 있는 사원만 한 바퀴 돌아보고 종탑의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촛불을 켜고 참배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사원 밖으로 시야를 돌려 바라보니 서쪽 계곡에 원뿔 피라미드 모양의 스리파다 그림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가끔은 일출 때에 이곳에서 브로켄 요괴 현상이 생긴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브뢰켄 요괴는 만나지 못했다. 완전 정삼각형의 비현실적인 스리파다의 모습만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제 가볍게 하산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사원을 나서니 내려오는 사람과 올라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이미 해가 환하게 떠올랐건만 실망의 빛조차 없이 아직도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너무 미안했다. 내가 먼저가 아니라 순례자인 그들이 먼저 올랐어야 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내려오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수없이 했다. 올라갈 때는 어두워서 보지 못했던 겹겹이 싸인 산과 호수가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조금 한산해진 곳에 이르러서 준비해 갔던 하이킹 폴을 꺼냈다. 두 개의 폴이 나의 두 다리를 도와주니 더 안전하고 편하게 계단을 내려왔다. 탁탁 소리는 났지만 하산 속도에 탄력이 붙었다. 이런 모습을 처음 보았는지 순례객들이 너무나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사실 이런 돌계단은 오르기보다 내려오기가 더 힘들다. 어떤 이는 기다시피 하면서 몸을 질질 끌면서 계단을 내려왔다. 올라갈 때는 거의 7시간 이상 걸렸는데 내려올 때는 3시간이 채 안 걸리고 입구에 도착했다.
부처님의 발자국이 있는 작은 사원. 특별한 시기에만 공개하고 사진 찍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델하우지에 도착하니 사원에서는 아침공양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순례자처럼 현지인들 사이에 앉았다. 비닐로 싼 접시에 밥과 커리와 2가지 반찬을 담아 주었다. 밤사이 5,500여 개의 계단을 왕복했으니 아침식사가 맛이 없을 리가 없었다. 너무나 맛있게 먹는 나를 그들이 신기한 눈빛으로 보았다. 아주 잠깐 순례자를 흉내 낸 시간이었다.
구름에 가려서 보지 못할 것 같은 일출도 즐겼고, 해가 뜰 때 생기는 거대한 피라미드도 보았다. 조금 아쉽게 아담의 발자국은 보지 못했지만 아담의 발자국을 보고 못 보고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밤새 그들과 함께 계단을 오르며 어렴풋이나마 신을 향하는 그들의 마음가짐을 느꼈고, 내가 순례자들처럼 스리파다를 밟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본 기사는 월간산 10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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