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라는 의미를 깨닫게 해준 특별한 나의 집

기고=김재준 입력 2021. 10. 25. 09:14 수정 2021. 10. 25.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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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다운 집으로] 30.김재준(새론중학교 3학년)

코로나19 재난 상황 속에서 집의 의미와 중요성이 커지는 현재, 아이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관심이 더욱 높아져야 할 것입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베이비뉴스는 아이들과 학부모, 전문가들과 함께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집다운 집으로' 연속 특별기고를 마련했습니다. 매주 월요일 아동의 권리 관점에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글을 전해드립니다. - 편집자 말

자연학교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는 모습.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집은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로 표현된다. 즉 외부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경계'이자 소속감과 안정감을 부여하는 고유한 영역인 것이다. 주위를 살펴보면 이러한 경계가 아이들에게 고립감을 주기도 하는 듯하다. 하지만 내게 있어 아빠라는 기둥이 없던 나의 울타리는 그 비밀스러운 담장을 높이는 대신 엄마의 오랜 고민과 노력을 바탕으로 '함께'라는 이름의 가족들로 오히려 확장되었다. 바로 '자연학교'와 공동육아 '이응'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주말마다 버스를 타고 갔던 자연학교는 나에게 있어 경계가 없고 눈에 담을 것이 많은 집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내가 제일 먼저 느낀 남다름은 '나는 아빠와 함께 살지 않는 아이'라는 것이었다. 공부도 곧잘 하고 반장도 할 만큼 친구 관계도 좋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 남다름은 가끔 나를 주눅 들게 했다. 특히 전학을 왔던 초등학교 3학년 하반기는 내 인생 최대의 우울한 시기이기도 했다. 주변 환경도 집도 전에 살던 동네보다 좋아졌지만, 크게 상관없던 나의 남다름이 전학해 온 이곳에서 '비밀'인 것이 더 좋을 거라는 어른들의 조언은 꼭 내가 뭔가 잘못한 것처럼 나를 눈치 보게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전학을 오고 나서도 변함없이 토요일마다 자연학교에 가며, 조금씩 나의 우울함을 떨치고 조금은 '특별한' 아이로 평화롭게 적응할 수 있었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자연학교에 가서 어울리기도 하고, 휴대폰과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친구들에게 다양한 놀이와 매곡리 곳곳에 숨겨진 나만의 아지트를 공유하면서 새로운 나의 '남다름'을 어필할 수 있었다고 할까! 대구에서 자연학교가 있는 군위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렸는데, 멀미가 있던 나에게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가는 길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자연학교에 도착하면 뽕나무에 올라 오디를 따먹고, 뽕잎도 조금 따다 송충이에게 주고, 강가로 달려가 버들 껌을 씹으며 한참 동안 올챙이를 잡았다. 하얀 내 운동화는 물에 젖고 진흙에 물들어 엉망이 되었지만, 뒤에 따를 엄마의 잔소리를 떠올리지 않았던 것 같다. 가을이면 추수가 끝난 논에서 메뚜기를 잡기도 하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서툴게 꼬아 만든 새끼를 긴 줄넘기로 엮어 동생들과 놀았다. 우리 즉, '이응이들'은 함께 여행이나 체험학습을 하기도 하고 부모님이 주도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경계 없이 웃고 뛰놀며 친하게 지냈다. 이응을 통해 나는 내 동생 말고도 한 명의 친구와 여덟 명의 귀여운 동생들을 둔 형이자 오빠가 되었으며,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많은 이모와 삼촌들, 귀여운 동생들의 사랑에 힘입어 낯가림 없고 인사성 밝은 아이가 되었다.

물론 경계를 허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단순히 프로그램 몇 개 함께 한다고 해서 가족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자연학교에서 나는 맏형이자 오빠로 어린 동생들을 돌보았고, 내가 관찰한 신기하고 새로운 것들을 동생에게 소개하려고 나름의 노력을 했다. 낯설어하거나 보채는 어린 동생들에게는 곤충을 잡아주기도 하고 종이를 접어 관심을 유도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몇 년이라는 꾸준한 시간이 흐르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연학교 졸업선물로 호미 한 자루를 받기까지 서서히 우리는 가족이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2년 가까이 자연학교와 이응 모임을 함께 하고 있지 못하지만, 자연학교는 나의 유년기를 든든하게 지켜준 울타리자 집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집은 마땅히 외부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안정감을 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집에 사는 친구들도 많은 것 같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각자의 '집'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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