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청년노동자

황예랑 기자 2021. 10. 2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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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1385호 표지이야기

한 친구가 있었다. 20대에 처음 만났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나는 세상과 조금씩 타협했고, 세상을 바꾸는 대신 세상일을 기록하는 기자가 됐다. 그 친구는 계속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다. 사회단체 활동가로 살았다. 가끔 취재를 부탁하는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2013년 1월1일, 그 친구가 마이크를 잡은 기자회견이 열렸다. 대변인이라고 했다. ‘알바연대’라는 노동단체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단 1명의 기자도 참석하지 않았다, 고 나중에야 전해들었다.

알바(아르바이트생)들의 노조라고? 처음 듣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잘될까, 싶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고작 10% 남짓한 한국에서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편의점,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는 알바들을 모아모아 노동조합으로 조직해내는 일이 가능할까. 그 친구는 ‘알바’가 아니라 ‘알바노동자’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금까지 아르바이트하는 사람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라고 했다. 대변인이던 그 친구는 언론에서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거듭 ‘알바노동자’라고 말했지만, 기사에는 자꾸만 ‘알바생’이라고 나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연일 이슈를 만들어냈다. 새벽에 편의점, 피시(PC)방 등을 돌아다니며 실태조사도 했다. 청년 알바노동자들이 벌이는 유쾌한 반란에 언론은 기사로 반응했다.

2013년 6월2일 새벽, 그 친구의 심장이 멈췄다. 서른다섯. 열정을 다해, 모든 것을 바쳐 ‘새로운 저항’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다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과로가 원인이었을 테다. 알바연대는 나중에 알바노조가 됐다. <한겨레21>은 2015년 제1055호 표지이야기로 그 친구의 삶을 뒤늦게 기록했다. 그 친구 이름은 권문석이다.

그때 알바노조 운동을 주도한 이들은 2030 청년이었다.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도 2010년 설립된 뒤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주휴수당 집단진정’ ‘피자 30분 배달제 폐지’ 등의 운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었다.

최근 스타벅스 트럭시위, 대기업 사무직 노조 설립 등을 보면서 그 친구를 떠올린 건 그래서다. MZ세대 담론이 모든 저항을 설명하는 만능열쇠처럼 활용되고 있다. MZ세대의 특별한 저항이라는 긍정적 해석도 있지만, 보수언론들은 ‘민주노총 등 기존 노동조합에 반기를 들었다’는 프레임을 짜고 이들의 모든 행동과 선택을 분석한다.

이런 해석에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세대론은 상당히 편의적이다.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스무 살 남짓까지 나이 차이가 나는 이들을 뭉뚱그려 ‘MZ세대’로 호명하는 것이 합리적인 분석틀인가. 세대란 역사적인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는 집단인데, 이들은 무엇을 공유하고 있는가. ‘공정’을 중시하고 ‘성과주의’ 등 임금체계에 민감한 것이 이 세대의 특징이라면, 2021년 한국을 살아가는 다른 세대는 다른가. 또한 1990년대 임금인상 등에 집착한다며 ‘전투적 경제주의’라고 비판받았던 노동조합과 임금체계 개편을 강조하는 ‘MZ세대 노조’는 무엇이 다른가. 2010년대 초반 청년유니온과 알바노조에 참가했던 20대 청년 중 일부는 여전히 밀레니얼(M)세대인데, 그들이 청년노동자로서 가진 당사자성은 10년 만에 달라졌는가.

이런 질문에 답할 만한 실마리를 찾아나섰다. 이번호 표지이야기는 MZ세대의 저항 또는 노동운동이라는 새로우면서도 논쟁적인 현상이다. 이정규 기자와 김선식 기자가 MZ세대 노조 당사자, 기존 노조에서 활동하는 MZ세대, 노동전문가 등을 두루 취재했다. 이 징후적인 현상의 밑바탕에는 산업구조 재편, 다양해진 고용형태, 불안정노동 증가 등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방준호 기자가 MZ세대 노동이 처한 배경을 짚었다. 다소 무거운 이야기지만, MZ세대가 그렇듯 ‘가볍고 신중하게 잽잽잽’ 날리는 느낌으로 접근했다. 독자에게도 그렇게 읽히기를 바란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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