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고소 8900건 제기한 30대 남성..고소·고발 '남용' 어디까지?

이승환 기자,김진 기자 2021. 10. 25.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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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영 경찰청 수사심사정책담당관 "고소권 남용" 우려
송원영 경찰청 수사심사정책 담당관이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10.13/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김진 기자 = "경찰이 사기 혐의로 고발당한 김철수씨를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에 착수했다."

언론 보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건 기사다. '피의자' '입건' '수사'라는 단어에서 김철수씨가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준다. 김철수씨를 '범죄자'로 단정 짓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피의자는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이다. 현행법과 수사기관 관행상 고소·고발당하면 사실상 자동으로 피의자 신분이 돼 수사를 받는다. 고소·고발 만으로 상대를 '범죄자 가능성 있는 사람' '경찰 수사 대상자'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소송당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도 피의자로 입건되면 수사기관에 출석해 조사를 받을 수 있다. 상당한 심리적 부담과 인권침해를 감수할 수도 있다."

송원영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심사정책담당관(총경)의 말이다. 수사심의 관련 제도·정책 등을 담당하는 송 담당관은 지난 13일 서대문구 미근동 국수본에서 진행된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정당한 고소권은 보장돼야 하지만 현행 기소 송치율을 보면 고소권이 남용되는 부분이 있다"고 꼬집었다.

◇고소·고발 기소 송치율 '29%'

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경찰이 접수한 전체 사건의 기소 의견 송치율은 57%로 나타났다. 반면 경찰에 접수된 고소·고발 사건의 기소의견 송치율은 29%에 불과했다.

전체 고소·고발 사건 10건 중 7건은 경찰이 수사 후 무혐의 등으로 판단했다는 의미다. 무혐의 결론이 났더라도 수사받는 동안 찍힌 '범죄자'라는 낙인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는 피의자를 범죄자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송 담당관은 "민사소송으로 해결해도 충분한 사안인데 형사로 소송하기도 한다.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서"라며 "수사 받지 않아도 될 사람이라도 고소·고발되면 수사기관에 출석해야 하고 압수수색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내 국가수사본부 건물로 직원들이 오가고 있다. 2021.3.9/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그는 "형사 고소·고발 시 수사기관이 사건 관련 증거를 확보한다. 이 증거는 민사 재판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데 이런 점 때문에 형사 소송을 진행하기도 한다"며 "이른바 '민사사건의 형사화'"라고 우려했다.

상습적으로 수사기관에 고발장을 제출해 '프로 고발러'로 불리는 집단 등에 대해선 "고발에 따른 여러 순기능이 있지만 고발권 남용으로 비칠 수 있는 실무적 사안이 있고 사회적 비용 증가를 초래하는 역기능이 있다"고 지적했다.

◇'선별 입건' 필요성

경찰 내에서는 최근 3년간 30대 남성이 8900여건의 민원·고소를 제기했다가 무고 등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가 있는 만큼 고소·고발 남용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1대 국회에는 범죄 피해자의 적법한 고소권을 보장하되 남용 문제 해결를 도모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피고소인·피고발인을 모두 자동 입건해 수사하는 게 아니라 고소·고발 건을 선별해 피의자로 입건하고 수사한다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송 담당관은 "법 개정안이 발의된 것만으로 상당히 획기적"이라며 "개정안대로 제도가 손질된다면 수사기관의 책임감 있는 심사를 토대로 고소·고발를 반려할 수 있다. 이 경우 억울한 피의자 양산이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의제기에 따른 외부 통제 절차도 개정안에 규정됐기 때문에 반려에 대한 수사기관의 책임감도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혐의 없는데도 고의로 고소·고발했다면?

치안정책연구소의 최근 용역 연구 보고서에서는 고소·고발 남용 억제 방안으로 수사단계에서의 비용 부담 제도를 언급했다. 불기소 처분을 받아 공소가 제기되지 않은 고소·고발인에게 수사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제도다.

현행법에는 재판비용(소송비용)만 고소인·고발인에게 부과하도록 돼 있다.

송 담당관은 "학계와 실무에서 수사단계에서의 비용 부담 제도가 우리나라의 고소·고발 남용 문제 해결에 도움 될 것 같다는 견해가 있다"면서도 "도입 가능성을 말하기 아직 이르다"고 했다.

송원영 경찰청 수사심사정책 담당관이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서 뉴스1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1.10.13/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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