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져봐야 공멸..일본 야당들 '단일화 공동투쟁'
입헌민주당·공산당 등 5개 야당
289개 선거구 중 217곳 '단일화'
140곳선 사실상 일대일 대결구도
아베·스가 정권 반대 여론 높아도
'무존재감' 야권, 위기의식 커진 탓
일 언론 "전국 40% 접전지역 예상"
“여야가 팽팽히 맞서면 국회에 긴장감이 생깁니다. 권력이 집중되는 비뚤어진 행정을 막을 수 있습니다. 국회의 풍경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31일 치러지는 중의원 선거를 앞둔 지난 17일 오후 6시 도쿄도 메구로구 가쿠게이대학역 앞.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렌호 대표대행(참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호소했다. ‘렌호’라는 파란 깃발이 휘날리자,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렌호 대행은 대만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다문화가정 출신으로 연예인, 저널리스트 등 독특한 이력을 가진 유명 정치인이다. 그는 옆에 서 있던 데즈카 요시오(55) 입헌민주당 의원(비례)을 소개하며 “여러분을 위해 일을 할 수 있게 진심으로 부탁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벚꽃이 아름다운 메구로와 세타가야를 아우르는 도쿄 5구는 이번 중의원 선거의 격전지로 꼽히는 곳 중 하나다. 기시다 내각의 각료인 와카미야 겐지(60) 의원(엑스포담당상)과 야당 공투(공동투쟁)를 전면에 내건 야권 단일후보가 맞붙는다. 데즈카 의원이 렌호 대표대행에 이어 마이크를 잡았다. “아베, 스가, 기시다 총리까지 자민당 정권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과 정치, 삶을 바꾸고 싶습니다. 그래서 야당이 하나로 뭉쳤습니다.” 이곳에선 데즈카 의원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레이와신센구미 후보가 출마를 포기했다. 21일 메구로구 지유오카역 앞에선 비례대표 후보(도쿄)로 나선 야마모토 다로 레이와신센구미 대표와 데즈카 의원이 한자리에 섰다. 야마모토 대표는 “두번째 (비례) 투표용지에는 ‘레이와’를 써달라”면서도 “첫번째 (지역구) 용지에는 ‘데즈카 요시오’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 지역의 현직 의원인 와카미야는 2012년부터 이곳에서 내리 3선을 하고 있다. 데즈카 의원이 번번이 패했지만 2017년 선거에선 불과 2천여표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각료 경험이 있는 한 관계자는 민영방송 <티비에스>(TBS) 인터뷰에서 “도쿄 5구에서 현직 장관이 패한다면 기시다 정권엔 큰 타격”이 된다고 말했다.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일본 주요 야당이 하나로 뭉쳤다. 거대 여당인 자민당을 꺾기 위한 야권 단일화 움직임이 2015년 말 시작된 뒤 드디어 처음 여야 일대일 승부를 벌일 수 있는 구도가 만들어진 셈이다. 전국 289개 중의원 선거구 중 75%인 217곳에서 입헌민주당, 일본공산당, 국민민주당, 사민당, 레이와신센구미 등 5개 야당이 단일화를 이뤄냈다. 국민민주당을 제외한 4개 당은 시민사회 인사들도 참여한 가운데 지난 9월 헌법 개악 반대와 격차와 빈곤 시정 등을 뼈대로 한 ‘정책 합의’도 했다. 단일화 후보는 입헌민주당이 160명으로 가장 많고 공산당 39명, 국민민주당 7명, 사민당 7명, 레이와 1명 등이다.
이 가운데 140개 선거구에선 보수 야당인 일본유신회가 후보를 내지 않아 존재감이 없는 무소속 후보를 제외하고 사실상 여야 일대일 맞대결이 펼쳐진다. 야권이 분열해 참패로 끝난 2017년 선거와는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다. 당시 여야 맞대결은 57곳에 그쳤다. 보수 야당인 ‘일본유신회’와 중의원 1석을 갖고 있는 ‘엔에이치케이(NHK)와 재판하는 당 변호사법 72조 위반’을 제외하면 야권이 사실상 하나로 똘똘 뭉친 셈이다. <마이니치신문>은 “향후 정권을 결정하는 중의원 선거에서 공산당이 제1야당과 함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야권 단일화가 성사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중도로 외연을 넓혀야 하는 입헌민주당의 일부 지역 후보들은 미-일 안보조약 폐기 등을 주장하는 공산당과의 연대가 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지금도 단일화를 거부하고 있다. 공산당도 “자민당을 쓰러뜨리고 싶어 신념을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지지자들의 비판을 받는 중이다.
우여곡절 끝에 야당이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인 것은 존재감에 대한 위기가 컸기 때문이다. <엔에이치케이> 방송의 여론조사를 보면, 스가 요시히데 전 정권의 지지율은 올해 4월 44%에서 도쿄올림픽 개최와 코로나19 급증으로 7월 33%, 8월엔 29%까지 떨어졌다. 민심은 요동을 쳤지만 입헌민주당의 지지율은 6.3%→6%→6.4%로 거의 변동이 없었다. 스가 내각의 지지율이 20%대로 붕괴했던 8월 기준으로 입헌민주당(6.4%), 공산당(3.3%), 국민민주당(0.8%), 사민당(0.5%), 레이와(0.2%) 등 5개 야당을 다 합쳐도 지지율이 11.2%에 불과했다. 일본 민심이 야당을 자민당을 대체할 수 있는 집권 세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아베·스가 정권에 반대한다는 여론이 높아도 “대안이 없다”며 자민당을 찍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다.
야당의 새로운 도전이 당장 정권 교체까지 가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조금씩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승패를 알 수 없는 접전 지역이 많아지며 선거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국 289개 소선거구 가운데 약 40%가 접전 지역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최대 일간지 <요미우리신문>은 자민당이 단독 과반(233석)을 유지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는 관망적인 판세 분석을 내놨다.
이번 총선은 지난 4일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 정권의 명운이 걸린 선거이기도 하다. 민심보다 당내 파벌의 힘으로 총리 자리에 올랐다고 평가를 받는 만큼,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끌어야 당내 장악력이 강해지며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해진다. 자민당이 의석수를 얼마나 유지(선거 이전 276석, 59%)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선거의 승패를 가를 기준은 자민당이 단독 과반을 달성할지, 자민·공명 연립여당이 ‘절대 안정 다수’(261석)에 도달할지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에 유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민당 독주와 정치의 무관심으로 일본 총선 투표율은 2009년 69.28%에서 2012년 59.32%, 2017년 53.68%까지 떨어졌다.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2009년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다. 이번 총선 투표율은 4년 전보다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일본인들 입장에서 이번 선거는 자민당의 파벌 역학에 의해 선출된 기시다 총리를 시민들이 심판하는 선거가 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투표 독려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엔에이치케이>는 최근 일주일 동안 트위터를 분석해 보니, 선거 관련 내용 중 ‘#저도 투표합니다’ 등 투표 호소 내용이 가장 많았다고 23일 보도했다.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미래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저도 투표하러 갑니다.” 트위터에 올라온 내용이다. 야당 공투가 얼마나 빛을 볼 수 있을지, 기시다 총리가 총선에서 승리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지 일본 유권자의 선택은 딱 일주일 남았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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