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의원 선거의 과제

한겨레 2021. 10. 2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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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세계의 창]
야마구치 지로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이달 31일 일본에서 중의원 선거가 예정돼 있다. 이번 선거에선 지금까지 없던 새 구도가 보인다. 일본에선 1996년부터 중의원 소선거구, 비례대표 양립제라는 선거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소선거구제는 큰 정당이 유리하고, 비례대표제는 작은 정당의 설 자리를 준다. 이처럼 성질이 전혀 다른 선거제도를 조합함으로써 일본 정당은 어느 부분에서 진화하고 어느 부분에선 혼란이 계속됐다.

이 제도에 가장 빨리 적응한 것은 자민당이다. 1990년대 대규모 뇌물수수 사건이 발생해 처음으로 야당으로 전락한 자민당은 존망의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지금은 당의 통일을 유지하고, 정당 시스템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공명당과 연립 정권을 실현해 항상 선거에서 유리하게 싸우고 있다. 1996년 이후 새로운 제도 아래서 자민당이 야당이었던 것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3년뿐이다. 자민당과 공명당의 정당연합은 정착됐다.

야당 쪽에서도 자민당에 대항하는 세력을 만들려는 시도가 여러차례 있어왔다. 권력과 이익의 공유를 위해 정치인이 모이는 자민당과 달리, 일본의 야당은 이치를 바탕으로 만들려는 성질이 있다. 대동단결보다는 독자성을 주장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예전부터 야당 쪽에서는 자민당에 대항할 때, 어느 정도 이념을 축으로 결집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대립이 있었다.

하나의 이념은 보수 양당론이다. 기본적인 정책은 자민당과 같지만 자민당 식의 기득권 집단의 보호는 그만두겠다는 노선이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도쿄에서 만들었던 지역정당이 이런 노선이다. 또 하나는 중도좌파 혹은 리버럴 정당이라는 비전이다. 이것은 과거 사회당의 흐름을 이어받고, 노동조합의 지원을 받는 그룹의 생각이다. 헌법 개정 문제나 경제정책에 있어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한 찬반을 야당 진영 안에서 정리할 수 없었던 것은 이런 이유다.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서 당시 민주당이 승리해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이때는 자민당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염증이 확산되면서 정권교체를 내세우는 민주당이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권교체를 실현함으로써 민주당은 그 역사적 사명을 다한 듯, 불과 3년 만에 무너졌다.

2012년 말 2차 아베 신조 정권이 출범하고 약 8년간 일본 정치 상황은 계속 나빠졌다. 상세한 설명은 피하고, 권력의 사유화와 폭주, 내각에 의한 자의적 헌법 해석 등 국민적 비판이 커져 내각 지지율은 추락했다. 올 9월에 탄생한 기시다 후미오 신임 총리도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말했다. 선거에서 현 여당에 맞서 정권을 잡을 만한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위기다. 정치에서 다른 선택지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컸다. 그 점에 대해 야당도 반성한 것 같다. 이번 선거에서 야권은 헌법 옹호, 평등과 생활지원을 경제정책의 기본으로 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리고 그 합의에 근거해 289개 선거구 중 약 220곳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를 이뤄냈다. 이로써 선거의 구도가 크게 바뀌었다.

원래 일본에서 소선거구제를 도입한 목적은 정권을 둘러싸고 큰 정당이 진지한 경쟁을 펼치는 정당 정치의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이번 총선에서는 온건파인 입헌민주당, 중도좌파 사민당, 그리고 공산당이 협력함으로써 야당의 정당연합이 이뤄졌다. 소선거구제의 목적이 야당 쪽에서도 비로소 실현됐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이 직면한 문제는 많다. 코로나19 대책의 실패는 일본 전체의 행정능력 저하의 표현이다. 경제의 정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평균 소득은 과거 20년 동안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 이미지는 먼 과거의 이야기다. 현재 상황을 직시하고, 어떤 정책 전환을 도모할 것인지, 이번 선거에서 논의해야 할 것이 많다. 양자택일의 구도를 살리고, 논쟁을 깊게 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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