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아이티의 비극

김태훈 논설위원 2021. 10. 25.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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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 카리브해에 작은 섬 이스파니올라가 있다. 그곳 흑인 노예들이 1804년 프랑스를 축출하고 아이티를 건국했다. 아이티인들은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식민지 시절에도 설탕·커피 생산지로 번영하며 유럽 국가의 아메리카 식민지 중 가장 부유하다는 명성을 누렸다. 프랑스로부터 배운 영농 기법만 잘 활용해도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해방 노예가 세운 최초의 독립국이란 국민적 자부심도 컸다. 1822년엔 여세를 몰아 그때까지 스페인 치하에 있던 섬 동쪽 도미니카 지역마저 손에 넣었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그러나 오늘날 아이티는 파탄국가(failed state)로 전락했다. 1957년 집권한 프랑수아 뒤발리에 대통령과 그의 아들 장클로드 뒤발리에의 30년 세습 정권이 나라를 완전히 거덜 냈다. 그후로도 쿠데타와 정파 대립, 무장 세력의 발호 등 혼란이 반복됐다. 오늘날 아이티는 인구 1140만명 중 60% 이상이 빈곤에 빠져 있고 120만명은 극심한 기아로 고통받는다.

▶아이티는 환태평양조산대 인근에 있는 재난 빈발 국가다. 2010년 1월 규모 7의 강진이 이 나라를 덮쳤다. 사망자 수가 22만명을 넘었다. 2월에는 같은 지진대에 놓인 칠레에 규모 8.8의 대지진이 닥쳤다. 아이티 지진보다 500배나 강력했다. 그런데 사망자는 450명뿐이었다. 칠레 정부가 앞장서 건물마다 내진 설계를 한 것이 수많은 국민 생명을 구했다. 1955년 허리케인 피해로 사망자 600명을 낸 멕시코는 2007년 같은 규모의 허리케인이 닥쳤을 때는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심지어 아이티와 국경을 맞댄 도미니카 공화국도 1844년 독립 후 경제 발전과 정치 안정을 이루며 중진국으로 발돋움했다.

▶정치가 실종된 아이티에는 깡패가 들끓는다. 전국적으로 무장 갱단이 90개 넘는다고 한다. 아이티에서 가장 세력 큰 갱단이 지난주 총리 주재 건국 영웅 추념식장에 난입해 총기 난사극을 벌였다. 지난 7월 대통령이 암살당하더니 이젠 깡패가 국가 행사장에 나타나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던 총리를 행사장 밖으로 내쫓고 총리 행세까지 했다.

▶아이티는 1949년 개발도상국 최초로 엑스포도 개최했던 나라다. 1950년대 초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50달러 선에 머물 때, 아이티는 200달러를 넘나들었다. 이젠 수많은 아이티인이 목숨 걸고 미국에 밀입국한다. 미 국경수비대가 그들을 찾아내 채찍질한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자들이 이런 국제사회의 멸시엔 변변한 항의조차 없다. 아이티의 비극이 정치 리더십의 중요성을 생생하게 증언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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