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추모의 권리
[경향신문]
파주 용미리에는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이 있다. 가족이 없거나 가족의 의사를 확인하지 못한 사망자의 유해가 이곳에 5년간 봉안된다. 우리는 2017년 이래 10월17일 빈곤철폐의날이면 이곳에서 추모제를 연다.
무연고 사망은 빈곤과 깊은 관련이 있다. 가난 때문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최초 주소지가 시설인 삶의 이력, 가족이 있지만 장례를 치를 여건이 되지 않는 형편이 무연고 사망자를 만든다. 한국의 장례에는 돈이 많이 든다. 장례식을 치르지 않더라도 병원에 안치된 시신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사망 전 치료비와 영안실 이용료를 내야 하는데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은 가족을 무연고 사망자로 떠나보낸다.
비용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의 법이 비혈연 관계의 연고자에게 법적 지위와 권한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연고자를 배우자, 자녀, 부모 등의 순으로 본다. 2020년 보건복지부의 지침으로 ‘가족 대신 장례’의 길이 열렸지만 지자체나 병원의 잘못된 안내나 무연고자로 지정된 이후에나 비혈연 연고자가 장례를 치를 수 있어 많은 기간이 소요되는 등 현실적인 문제가 많다. 의료법에 따른 사망진단서 발급 대상조차 혈연 가족에게 한정되어 있다.
1인 가구가 31%로 대세 중의 대세가 됐지만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1인 가구를 다인 가구로 만들거나 고립을 덜어주겠다는 얄팍한 프로그램에 그치고 있다. 여기엔 기존 가족제도를 벗어난 관계에 법적 지위를 보장하거나, 정상가족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사회정책을 재구성할 아이디어가 없다. 인간의 생로병사와 관련된 첫 번째 책임을 가족에게 맡겨온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는 이제 시효가 만료했다. 장사법도 그중 하나다.
추모의 집은 여느 봉안시설과 생김새가 다르다. 빼곡하게 맞붙은 책꽂이 같은 봉안실은 레버를 돌려야 누가 안치되어 있는지 겨우 볼 수 있다. 평상시엔 이조차 볼 수 없다. 2017년 추모제를 시작한 이래 서울시설관리공단은 추모제 하루에 한하여 추모의 집을 개방했다. 단 하루라도 고인을 가까이에서 추억하고 지인들이 추모제를 찾았던 이유다. 올해는 코로나를 이유로 추모의 집조차 개방하지 않았다. 하루의 선심은 이렇게 얄팍하다.
거리에서 만난 한 홈리스는 시신기증등록증을 소중히 품고 다녔다. 아무도 수습하지 않는 죽음이 두려웠던 그는 이게 있으면 ‘괜찮게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신분증보다 소중하다고 말했다. 무연고 사망자 추모제에 모인 고인의 친구와 이웃들은 ‘이렇게 처리되는 것이 나의 마지막이기도 하다’며 서럽게 운다.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돌봄과 죽음의 모양이 달라지는 사회에서 더 나은 삶도 기대할 수 없다. 결국 추모와 죽음은 삶의 문제다. 존엄한 죽음은 존엄한 삶에 맞닿아 있다. 이를 기준으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때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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