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이민자 갈등, 남의 일 아니다
지난해 독일·영국·프랑스의 육류 가공 공장이 코로나 바이러스 소굴로 지목됐다. 소·돼지를 손질하는 동유럽 출신 도축 근로자들은 합숙한다. 한 명이 수백 명에게 옮기는 건 순식간이다. 고향으로 잠시 돌아간 도축 인력들을 독일·프랑스는 다시 불러들였다. 하지만 영국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스스로 울타리를 쳤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이 EU 탈퇴를 선택한 이유는 ‘외국인들이 몰려오는 게 싫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올해 1월 EU와 완전 결별한 이후 외국인에게 취업 비자 문턱을 높였다. 이런 조치는 현실 외면이다. 영국 축산업계 종사자 9만7000명 중 62%가 동유럽 쪽 EU 국적자다. 도축장 일손이 부족한 문제는 파장이 작지 않다. 농가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고깃값이 급등할 조짐도 나타났다. 이뿐 아니다. 대형 트럭을 운전할 외국인이 부족해졌다. 주유소에 기름이 동났고, 컨테이너 운반을 못해 물류가 마비됐다. 간병인 구하기도 어려워졌다.
프랑스도 영국과는 방향은 다르지만 역시 이민자 문제로 시끄럽다. 내년 봄 대선을 앞두고 이민자를 쫓아내자는 극우 후보 2명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2위와 3위를 번갈아 차지하고 있다. 전례 없는 일이다. 유력 대선 후보로 트럼프 같은 사람이 둘이나 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연원을 캐려면 45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1976년 프랑스는 북아프리카 출신 무슬림 이민 노동자가 고국의 가족을 데려올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때만 해도 국력이 꽤 강했다. ‘관용’이니 ‘연대’라는 말을 선심 쓰듯 꺼냈다. 당시 문을 확 열어젖힌 탓에 지금 프랑스에는 무슬림이 600만 명 이상 살고 있다. 무슬림의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인종·종교 간 대립이 첨예하다. 국력은 예전만 못하니 백인들은 유색 인종들에게 ‘파이’를 나눠 주지 못한다. 이것도 많은 갈등을 야기한다.
영국·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이민자를 둘러싼 논란은 압도적으로 비중이 큰 사회 문제다. 한국도 곧 그렇게 된다. 멀지 않은 미래에 노동력 부족이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한 해 출생아가 30년 전에는 70만 명이었다. 하지만 10년 전에는 47만 명이더니 작년엔 27만 명이었다.
모든 건 정도의 문제다. 최근 영국처럼 감정이 앞서 문을 닫아버리면 경제가 마비된다. 1970년대 프랑스처럼 갑자기 문을 열면 후일 뒷감당을 못할 가능성이 크다. 언제부터 얼마만큼 빗장을 풀어야 할지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온다. 하지만 당장 발등의 불이 아니라 그런지 대선 국면에서 다뤄지지 않고 있다. 골치 아프다며 이민자와 외국인 인력을 둘러싼 논의를 미루면 문을 확 열었다가 다시 확 닫으며 우왕좌왕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게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 나라 전체가 홍역을 심하게 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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