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19] 원희룡의 용천검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2021. 10. 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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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 잡기가 어려운 일이다. 정보와 직관으로 판단을 내리기도 하지만, 시간을 참고 기다려야만 타이밍이 오는 수도 있다. 10월 하순쯤 되어야 감나무의 감이 붉게 익는다. 가을이라는 철이 들어오기 전까지 감은 푸르뎅뎅하다. 삼복에 장작 난로 팔려는 것이나 눈 올 때 선풍기 파는 일은 철없는 짓이다. 인생에서 철이 들고 타이밍을 잡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요즘 ‘대장동 1타 강사’로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원희룡을 보면서 ‘타이밍이 왔다’는 느낌이 든다. 원희룡은 정치 입문 20년 동안 별다른 ‘이미지’를 구축하지 못하였다. 범생이로 파리만 날렸다. 물론 학력고사 수석, 사법시험 수석의 타이틀은 있었지만 정치인으로서의 뚜렷한 이미지는 없었다. 공부 잘하는 것과 정치 실적은 상관없었다. 정치라는 영역은 성적이 중간 정도 되는 사람이 잘하는 것일까? 그러나 원전 설계 다음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구조를 지닌 대장동 설계도를 해부하는 능력은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있다. 마치 300kg짜리 참치를 회칼 두어 개로 깔끔하게 포를 뜨는 일식 주방장 같다. 우선 분석력과 추리력이 뛰어나다. 이를 바탕으로 원 설계자의 의도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알려준다.

예전에 원희룡에게 ‘수석 합격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시험 출제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비결이다’라는 대답이 생각난다. 시험 출제자의 입장에서 시험공부를 했던 것이다. 이는 대장동 설계자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을 수 있는 훈련이 원희룡에게 충분하게 되어 있었다는 말이 된다. 대중적인 표현을 쓰고 짧게 말할 줄 안다. 거기에다가 제주지사 시절에 건설업자들과 씨름판에서 샅바를 잡아 본 경험이 있다. 펜대들은 쉽게 파악이 안 되는 건설업의 난폭함과 스리쿠션을 잘 알고 있다. 현장에서 샅바 잡아 보았던 경험이 보약이다.

대장동 골목에서 쫓기는 이재명과 쫓는 원희룡. 대조적인 스펙의 용띠 동갑내기를 보면서 인간사는 참으로 묘하다는 소회가 든다. 원희룡은 이재명을 상대하면서 그동안 쌓아왔던 내공과 정치인으로서의 존재감이 이제야 드러나니까 말이다. 듣자 하니 이재명은 무협지에 나오는 만독불침(萬毒不侵)이라는 갑옷과, 검찰 개혁이라는 특수 제련 과정을 거쳐 장만한 ‘방탄검찰’이라는 방패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꺼낸 탐라국의 용천검(龍泉劍)으로 이 갑옷과 방패를 뚫어내야 하는 팔자이다. 살면서 용천검을 휘두를 수 있는 기회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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