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원이 푼돈이라는 세상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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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임플란트를 했다.
"하나에 100만 원 정도 생각하시면 되고요. 뼈이식이 필요하면 추가부담이 있습니다." 누군들 임플란트가 좋은 줄 몰라서 버텼겠는가.
임플란트를 한 이유는 그동안 지푸라기처럼 의지했던 어금니마저 망가졌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보기에 푼돈, 잔돈이라는 50억 원이면 임플란트를 몇 개나 할 수 있을까? 내 경우와 같이, 원데이임플란트라는 신기술을 적용할 경우(치아 하나당 50만~60만 원이다) 무려 1만 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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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임플란트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이가 드니 여기저기 깨지고 망가지고 난리도 아니다. 한쪽 어금니, 송곳니가 빠진 건 10여 년 전, 앞니에 금이 간 것도 3년이 넘었다. 이가 흔들리고 아파도 성한 치아로 음식을 씹을 수 있기에 아내한테도 쉬쉬하며 버텨 왔다. 조금 불편할 뿐이잖아? 먹고살 수 있으면 됐지, 뭐.
"임플란트 하셔야겠어요. 다섯 개는 바꿔야겠는데요?" 올여름 스케일링하러 마을 치과에 갔더니 담당의사가 그런다. "얼마 정도 해요?" 내가 묻자 의사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한다. "하나에 100만 원 정도 생각하시면 되고요. 뼈이식이 필요하면 추가부담이 있습니다." 누군들 임플란트가 좋은 줄 몰라서 버텼겠는가. 의사 말대로라면 치료비가 700만~800만 원은 될 텐데 내가 두 달 이상 죽어라 번역을 해야 벌 수 있는 액수다. 당장 죽을 것도 아닌데 그저 식사 조금 편하게 하자고 그런 거액을 아무렇지 않게 내던질 용기는 내게 없었다.
임플란트를 한 이유는 그동안 지푸라기처럼 의지했던 어금니마저 망가졌기 때문이다. 식사할 때마다 아프기도 했지만 제대로 씹지를 못하니 속까지 매일 말썽이었다. 작업능률은 떨어지고 짜증은 늘어만 갔다. 결국 몇 주를 고민하다 아내한테 실토하고 말았다. 아내는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당장 치과에 다녀오라며 야단을 쳤다.
하나마나 한 얘기지만 늙는다는 건 돈이 드는 일이다. 낡은 자동차처럼 마냥 고장만 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수리비라도 퍼주며 끌고 다녀야지 어쩌겠는가. 돈이 아깝기는 해도 나야 그나마 형편이 되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고장 나면 고장 나는 대로 그 고통을 온전히 감내하며 살아가야 한다. 치아 몇 개가 이렇게 괴로울진대, 더 극심한 고통까지 진통제 몇 알에 의지하며 사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아니, 가난은 아예 늙을 기회마저 앗아가 버린다.
스탠퍼드대학의 최근 통계자료를 보면, 40세 이상 남성의 기대수명은 소득 최상위 1%는 87.3세이고 하위 1%는 72.7세에 불과했다. 부유층이 빈곤층에 비해 15년 가까이 장수를 누린다는 얘기다. 아주 옛날 내가 다녔던 재건중학교는 빈민 아이들을 수용해 검정고시 과정을 가르치는, 이른바 비인가학교였는데, 60명 남짓의 동기생 남자 중 환갑 나이에도 이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친구가 무려 스물다섯 명이나 된다.
부자들이 보기에 푼돈, 잔돈이라는 50억 원이면 임플란트를 몇 개나 할 수 있을까? 내 경우와 같이, 원데이임플란트라는 신기술을 적용할 경우(치아 하나당 50만~60만 원이다) 무려 1만 개가 된다. 1인당 3개를 식립한다고 가정할 때 3,000명 이상이 편하게 맛난 음식을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가난을 겪어보지 못했으니 어찌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알겠느냐만은, 그럼 적어도 말끝마다 국민의 행복, 국민의 안녕이니 하는 헛소리라도 입에 담지 말 일이다. 그놈의 푼돈도 잔돈도 못 되는, 최저임금을 위해 매일매일 이른바 죽음의 오징어 게임에 나서야 하는 국민들의 심정을 단 한 번이라도 헤아려 보고 그런 얘기를 하는 걸까? 그 푼돈, 잔돈이야말로 바로 국민들의 행복을 외면한 값이고 목숨을 빼앗아 간 값이 아닌가 말이다.
얼마 전 친구의 한탄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강남 사람들은 절대 안 죽어요. 변방에서나 죽어 나가지…"
조영학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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