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볼모'로 기부채납 약속 어기고 아파트 지을 '알짜 땅' 달라는 건설사

강현석 기자 입력 2021. 10. 2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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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전남 순천시 신대지구에 있는 순천삼산중학교. 이 중학교는 지난해 3월 이곳으로 이전했지만 학교 부지의 소유권은 건설사가 갖고 있다. 네이버 지도 캡처
순천시 옛 삼산중 이전 부지
새 학교 기부 조건 일부 양여

전남 순천시 신대지구에 있는 순천삼산중학교는 사립학교가 아닌데도 건설업체 소유다. 지난해 3월1일 이곳으로 이전한 학교에는 600여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지만 학교 운동장과 부지 등은 순천에코밸리가 주인이다.

건설업체 소유인 탓에 이 학교는 체육장 개보수나 안전시설물 설치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가입하는 학교안전공제회의 보상 범위에도 법적 다툼의 소지가 있다. 건설업체는 학교가 부지를 무단점유하고 있다며 부지사용료로 매년 수억원씩을 요구하고 있다.

24일 경향신문이 확인한 전남도교육청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를 보면 교육청은 2020년 3월 이전한 순천삼산중학교의 소유권을 아직까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삼산중학교 이전은 중흥건설이 2017년 신도시인 신대지구에 아파트 건설을 계획하면서 추진됐다. 중학교가 부족한 신도시에 아파트 건설을 추진한 중흥건설은 구도심에 있는 중학교가 이전할 수 있도록 학교를 신축하는 조건으로 사업승인을 받았다. 2017년 11월 중흥건설과 교육청, 순천시,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은 ‘삼산중학교 이설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20년 3월 학교 이설을 완료하기로 했다.

중흥건설서 ‘분할’ 변경 요구
교육청에 소유권 이전 안 해
학교 시설물 개보수도 못해
작년 학교 사용료 4억 청구도

중흥건설이 2만453㎡ 부지에 28학급 규모의 학교를 건축해 교육청에 기부채납하면 교육청은 매곡동에 있던 기존 삼산중학교 부지를 중흥건설이 기부한 면적만큼 분할해 양여하는 조건이었다. 학교 신축 공사는 예정대로 진행돼 지난해 3월 완료됐다. 학교가 이전되면서 아파트도 지난해 10월 사용승인을 받아 입주가 끝났다.

하지만 2018년 2월 업무협약 당사자를 순천에코밸리로 변경한 중흥건설은 학교 소유권을 교육청에 이전하지 않고 있다. 순천에코밸리는 기부채납 조건으로 옛 삼산중학교 부지에 대한 분할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이 부지에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큰 도로 쪽에 인접한 땅을 달라는 것이다.

순천에코밸리는 중흥주택이 지분 86.4%를 보유하고 있는 중흥건설 계열사다.

토지가 이렇게 분할되면 교육청이 소유하게 될 나머지 1만3305㎡는 진입로가 없는 쓸모없는 땅이 된다. 이곳으로 순천시교육지원청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교육청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협의가 이뤄지지 않자 순천에코밸리는 “학교가 토지를 무단점유하고 있다”며 지난해 10개월 사용료로만 4억1000만원을 교육청에 청구했다. 올해도 사용료로 수억원을 더 청구했다.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으면서 학생 안전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다. 감사원은 “체육장 개보수, 안전시설물 설치 등이 제한돼 학생 안전에 장애를 초래하고 안정적인 학습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 건물은 공제회에 가입됐지만 교육청에 소유권이 없는 운동장 등에서 학생들이 다쳤을 경우에는 보상을 두고 법적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전남도교육청 관계자는 “중흥건설에 양측이 모두 진입로를 사용할 수 있는 수정안 등을 제시했지만 ‘아파트 가구수가 줄어든다’며 반대하고 있다”면서 “기부하기로 했던 학교를 볼모로 사용료를 청구하는 등 건설사가 이윤만 챙기려 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순천에코밸리 관계자는 “교육청이 옛 삼산중학교 부지의 출입구 쪽 땅을 원하면서 생긴 일”이라며 “교육청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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