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둔화로 짙어진 인플레이션 그림자..'긴축 시계' 초읽기
[경향신문]
‘원자재 수급·물류 불안’ OECD 경기선행지수 계속 하락
WTI·천연가스 가격 급등에 ‘물가 오름세’ 장기화 전망
미 금리 인상 시 신흥국 자금유출…금융시장 불확실성↑
반등하던 경기가 최근 둔화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라는 ‘강한 복병’과 맞닥뜨렸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경기대응과 인플레 방어라는 상충된 목표 사이에서 각국의 정책이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움직일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돈줄 조이기’가 본격화할 경우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높아질 수 있어 충격을 줄이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 경기 회복세, ‘일단 주춤’
24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9월 경기선행지수(CLI)를 보면 한국은 101.8로 전월 대비 0.05% 하락했다. 경기선행지수는 가까운 장래의 경기동향을 예측하는 지표로 쓰인다. 한국이 선행지수는 여전히 기준치인 100을 웃돌고 있지만 7월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경기 전망이 어두워진 데는 원자재 수급과 물류 불안으로 인한 제조업 기업 심리가 빠르게 얼어붙은 것이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 이후 경기를 끌어올린 정책효과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점도 기저에 깔려있다. 지난달 제조업 재고율은 전월 대비 8.0%포인트 뛴 112.3%로, 지난해 5월(8.8%포인트) 이후 최대 상승폭을 보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7일 반년 만에 ‘하방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주요국의 흐름도 비슷하다. 미국(-0.03%), 일본(-0.03%), 독일(-0.02%) 등 주요국 선행지수는 뒷걸음질쳤다. 특히 미국은 지난달 산업생산이 전월보다 1.3% 감소하며 시장 예상치(0.2%)를 크게 뛰어넘는 낙폭을 보였다.
■ 물가, 예상보다 길게 오른다
심상찮은 물가 오름세는 최근 세계 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꼽히는데, 예상보다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 19일 기준, 연초 대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71%, 천연가스는 113% 가격이 급등했다. 원료값이 올랐음에도 생산시설 가동률은 오히려 9.9%나 떨어진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김연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경기 불확실성, 친환경 정책 등으로 에너지 설비에 대한 투자가 줄면서 에너지 생산도 빨리 회복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고용이나 소득이 아직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물가 상승은 서민 체감경기를 더욱 팍팍하게 만든다.
한국은 정부가 물가 대응을 위해 3년 만에 유류세를 인하하고 액화천연가스(LNG) 할당관세는 0%를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럼에도 유가 오름세가 이어지고, 원·달러 환율까지 오르고 있어 체감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공급 병목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세계 컨테이너선 운임 지표인 상하이운임지수(SCFI)는 지난 15일 기준 4588.07로 1년9개월 만에 4배 넘게 뛰었고 미국 LA·롱비치항만에서는 인력 부족으로 인해 여전히 선박 157척이 하역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 항만 앞바다에서 대기 중인 화물의 가치가 262억달러(30조8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 고물가에 긴축 시계 빨라지나
높은 물가 상승세는 긴축의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통화정책의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이 확대된다면 고용 회복이 지연되더라도 정상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권고했다. 이미 한국과 노르웨이, 신흥국 중에서 브라질, 러시아 등이 금리를 올렸다.
특히 미국의 금리 인상은 신흥국의 자금유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다. 연준은 아직 금리 인상에 신중한 입장이지만, 물가 오름세가 워낙 가파른 점이 변수다. 당장 연준 내 매파(통화긴축 선호) 측에서는 예고한 2023년 이후가 아닌 내년부터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금리 인상 기조가 전 세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금융시장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주혜원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각국의 저금리 의존도가 크게 높아진 만큼 조기 금리 인상 우려를 적절하게 억제하지 못할 경우 금융시장 불안이 초래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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