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못 사면 내가 해결"..유동규 공소장 곳곳 '배임' 정황 뚜렷

이보라 기자 2021. 10. 2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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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핵심 혐의인 '배임' 빠진 유동규 공소장

[경향신문]

남욱에 “성남도개공 설립 도와주면 민간사업자로 선정”
조례 통과에 “구획 계획도 너희 맘대로 해라” 3억 요구
윗선 규명이 수사 관건…조만간 김만배·남욱 영장 청구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공소장에서 제외한 핵심 혐의인 배임 입증이 향후 수사의 과제로 떠올랐다. 유 전 본부장의 개인 일탈에 그치는지,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윗선’까지 이어지는지 밝히는 게 수사의 관건이 됐다. 유 전 본부장의 배임 정황은 공소장 곳곳에 담겨 있다.

■ 공소장 곳곳에 유동규 배임 정황

24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이 지난 21일 법원에 넘긴 A4용지 8장 분량의 공소장에는 유 전 본부장이 고의로 대장동 개발 시행사 ‘성남의뜰’ 주주인 화천대유자산관리에 막대한 개발이익을 몰아준 정황이 보인다.

검찰에 따르면 유 전 본부장은 성남시설관리공단 기획본부장으로 일하던 2012년 화천대유 측 남욱 변호사에게 “공사 설립을 도와주면 민간사업자로 선정돼 민관합동으로 대장동을 개발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2013년 2월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 주도로 공사 설립 조례안이 통과된 뒤에는 남 변호사에게 “대장동 개발사업 구획 계획도 너희 마음대로 다 해라. 땅 못 사는 것 있으면 내가 해결해주겠다”며 “2주 안에 3억원만 해달라”고 했다. 이에 남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정재창씨는 각각 돈을 마련해 같은 해 4~8월 강남 룸살롱 등에서 유 전 본부장에게 3억5200만원을 전달했다.

■ 대장동 세력 설계대로 돌아간 판

이후 대장동 개발사업은 화천대유 측 설계대로 진행됐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2014년 4월 대장동 도시개발 주민추진위원회 회의 녹음파일을 보면, 남 변호사는 유 전 본부장에 대해 “(이재명 성남시장이) 재선되면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얘기가 있다고 들었는데 민감한 시기라 저희는 안 만난다”며 “공사가 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재명 시장이 되고, 유동규 본부장이 사장이 되면”이라고 말했다.

이에 주민추진위 인사가 ‘새로운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은 임기가 없느냐’ ‘황무성은 낙동강 오리알이네. 몇 달 써먹고 말았네’라고 말하자, 남 변호사는 “임기는 있는데 사임하면 뭐”라고 답했다.

남 변호사의 발언은 이후 고스란히 현실화됐다. 황무성 초대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은 임기를 1년6개월 남겨두고 2015년 3월 돌연 중도 하차했고, 유 전 본부장이 권한대행 역할을 하며 대장동 개발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 측인 정민용 변호사와 김민걸 회계사 등 인맥을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수혈하고 초과이익 환수 조항도 삭제하는 결과를 이끌었다.

■ 유동규 일탈이냐, 윗선 개입이냐

향후 수사의 관건은 이 같은 행위가 유 전 본부장 개인의 일탈인지,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윗선’의 관여가 있었는지 밝혀내는 데 있다. 유 전 본부장 채용에 이 지사가 관여했는지, 이 지사가 초과이익 환수 조항 삭제에 대해 보고를 받았는지가 쟁점이다.

별다른 관련 이력이 없었던 유 전 본부장이 이 지사 선거운동을 도운 뒤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으로 발탁된 점, 이 지사가 경기도지사에 선출된 이후에는 경기관광공사 사장에 임명된 점 등이 두 사람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정황으로 꼽힌다.

당시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투자팀장으로 공모지침서 작성 등 실무를 담당한 정민용 변호사가 최근 대장동 개발사업 동업자들에게 ‘공사 이익을 확정한 내용의 공모지침서를 작성해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에게 직접 보고하러 갔다’는 취지의 발언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 선후 바뀐 검찰 수사

검찰의 배임 혐의 수사를 두고 선후가 뒤바뀌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속영장 청구 단계에서는 확실한 혐의를 넣고 보강수사를 거쳐 기소할 때 혐의를 추가하는 게 통상적이다. 그러나 유 전 본부장의 경우 구속영장 청구 때는 배임 혐의를 비롯한 여러 혐의를 넣었다가 정작 기소할 때는 혐의가 대폭 줄었다.

당초 검찰이 녹취록에만 의존한 채 별다른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고, 대장동 개발 인허가 자료가 포함된 성남시청 압수수색도 뒤늦게 들어간 탓이다. 그렇다보니 여당은 “뚜렷한 물증도 없이 의도를 갖고 배임 혐의를 구속영장에 넣었다”고 비판하고, 야당은 “공소장에 배임 혐의를 뺀 건 ‘이재명 꼬리자르기’”라고 비판하는 상황이다.

‘50억원 클럽’ ‘700억원 약정설’ 등 정·관계 로비 의혹도 규명해야 할 과제다. 검찰은 유 전 본부장, 곽상도 무소속 의원 등에게 755억원 뇌물을 공여한 혐의 등으로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검찰은 이날 김씨와 남 변호사, 황무성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을 불러 유 전 본부장의 배임 등 혐의를 다지는 데 주력했다. 검찰은 조만간 김씨와 남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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