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에티쿠스 - 김상봉 [이승우의 내 인생의 책 ①]

이승우 |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2021. 10. 24.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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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출내기 시절 첫 책

[경향신문]

책 만드는 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내게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첫 책은 25년여간 편집자-저자의 관계를 맺고 있는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호모 에티쿠스>이다. 신출내기 편집자 시절 어느 날, 퇴근 시간이 되어 가방을 꾸려 자리에서 막 일어나려던 찰나 전화가 걸려왔다. 계약한 원고를 다 써 e메일로 보냈다는 목소리에 ‘왜 하필 지금 보내서 퇴근길 바쁜 발걸음을 부여잡나’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나는 컴퓨터를 재부팅해 원고를 읽어나가면서 자세를 고쳐 앉고는 9시까지 꼬박 전체 원고를 꼼꼼히 읽었다. 개안(開眼)이었다. 무엇보다 흠잡을 데 없이 논리적으로 써 내려간, ‘교양서’이지만 탄탄한 우리말 실력에 바탕을 둔 글쓰기가 당시까지 읽어왔던 여타의 책들과는 비교되지 않았다.

서양 고대의 소크라테스부터 근대의 칸트까지 다룬 이 책은 지금도 관련 분야의 스테디셀러로 서양 윤리학 입문 필독서 역할을 하고 있다. 아니, 윤리학의 테두리를 벗어나 ―한 독자가 후기로 “철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학문인가”라고 할 정도로― 이 책은 고담준론의 세계로 취급되곤 하는 ‘철학’의 세계에 대한 더없는 안내자이다.

그 이후 나는 김 교수의 거의 모든 책에 관여해 만들 수 있는 행복한 경험을 해왔다. 그리고 지금, 그는 200자 원고지 6000장 분량의 방대한 책을 거의 탈고할 시점에 와 있다. 그가 이 원고를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나는 진행 상황에 몸이 달아 매년 빛고을 광주를 두세 번 찾아 그의 사유세계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호모 에티쿠스>부터 현재 쓰고 있는 원고에 이르기까지 그는 한결같은 철학적 물음과 문제의식으로 자신의 사유체계를 톺아왔다.

이렇듯 ‘첫 독자’로서 누리는 감흥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편집자의 특권 아닐까.

이승우 |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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