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하게 때론 우아하게.. 춤으로 그린 '3색 보석'

박성준 입력 2021. 10. 24.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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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주얼스' 국내 초연
1막 '에메랄드' 별이 빛나는 밤 연상
무용수들의 몽환적 몸짓이 인상적
7개의 장면이 하나의 심상 만들어
2막 '루비' 미국 발레의 활력 보여줘
클럽댄서 연상시키는 발랄한 의상
자유로움·재치 실어 변형된 춤 선사
3막 '다이아몬드' 고전발레 정수 모아
러 황실발레 전통 현대적으로 재현
기하학적 문양으로 강한 인상 남겨
국립발레단이 지난 20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내 초연한 ‘주얼스’. 신고전주의발레 창사지인 조지 발란신이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로 각각 프랑스, 미국, 러시아 발레의 정수를 모은 최초의 전막 추상 발레 작품이다. 사진은 3막 ‘다이아몬드’. 국립발레단 제공
화려한 왕궁도, 달빛 서린 호수도 없는 무대에서 빛나는 건 오로지 춤이다. 배역에서 풀려난 무용수들은 오로지 안무가가 구상한 이미지를 온몸으로 만들어내는 데 집중한다. 신비한 에메랄드와 발랄한 루비, 그리고 영롱한 광채를 발산하는 다이아몬드가 완성되며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탁월하다. 조지 발란신의 ‘주얼스’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빛난 순간이다.

국립발레단이 지난 20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주얼스’를 국내 초연했다. 다양한 이야기가 화려한 무대, 의상과 함께 펼쳐지는 고전 발레와는 결이 다른 작품이다. 특별한 줄거리 없이 오로지 무용수 몸짓과 음악으로 만들어지는, 최초의 전막 네오클래식·신고전주의 발레다. 주로 고전 발레를 무대에 올리는 국립발레단의 발란신 작품 공연은 창단 이후 두 번째다. 2017년 갈라 공연에서 발란신의 또 다른 대표작 ‘세레나데’를 다른 안무가 작품과 함께 선보인 정도다.

그만큼 신고전주의 발레의 낯선 형식과 무대는 생경했다.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 모음곡, 야상곡 등에 맞춰 낭만주의 발레를 오마주한 1막 ‘에메랄드’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단순한 무대에서 펼쳐졌다. 녹색 튀튀를 입은 무용수들의 몽환적 몸짓이 인상적이다. 어깨와 팔 선으로 우아하게 그려내는 기하학적 문양이 아름답다.
1막 ‘에메랄드’.
‘에메랄드’의 핵심은 우아한 팔동작 ‘폴 드 브라’. 이번 무대를 지도하기 위해 내한한 발란신재단 연습코치 산드라 제닝스는 국립발레단과 인터뷰에서 자신이 직접 발란신으로부터 배웠던 ‘폴 드 브라’의 정수를 이렇게 설명했다.

“댄서가 머리를 올바르게 지탱하기 위한 손과 팔의 사용과 움직임이다. 다만 팔 흐름은 군인처럼 기계적이지 않고 인간적이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발란신 작품에서 손은 둥근 형태를 지향하되 모든 손가락을 외부로 노출해야 한다. 세 손가락만 보이거나 손등 안으로 손가락을 숨겨선 안 된다.”

군무와 2인무, 1인무 등이 이어지며 총 7개 장면이 펼쳐지는데 끝까지 흘러가면 전체가 하나의 심상(心象)을 만든다. 저절로 은은한 빛을 발산하는 에메랄드를 떠올리게 만드는 무대였다.

이야기가 사라지고 배역도 따로 없는 무대에선 걸출했던 안무가의 존재감이 커진다. 발레 역사에서 가장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 이는 역시 마리우스 프티파와 발란신이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죽은 발란신(1904∼1983)은 발레 안무를 독립된 예술 장르로 끌어올린 안무가다. ‘백조의 호수’등에서 프티파가 완성한 고전 발레의 아름다움을 계승하면서 단순한 무대와 의상 등으로 혁신을 추구했다. ‘신고전주의발레의 아버지’로서 400여편이 넘는 작품을 안무했다. 그가 뉴욕 5번가 ‘반클리프 아펠’ 상점 진열장 속 보석에서 영감을 받아 세상에 나온 보석 시리즈 연작이 ‘주얼스’다.
2막 ‘루비’.
발란신 특유의 풍취가 가장 강한 2막 ‘루비’는 흥미진진하다. 발란신이 기틀을 세운 미국 발레의 활력을 보여준다. 스트라빈스키의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카프리치오’ 특유의 역동적인 리듬에 맞춰 마치 호텔 벨보이, 클럽 댄서를 연상시키는 발랄한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이제껏 국립발레단 무대에서 보지 못했던 춤을 보여줬다. 손뼉을 마주치는 자유로움과 재치를 실어 고전 발레 동작을 조금씩 변형한 춤을 계속 뛰어다니며 선보이는데 힘들면서도 즐기는 모습이다. “무용수라면 신작을 좋아하기 마련이고, 고전보다 모던을 대부분 선호한다”던 어느 고참 발레리나와 인터뷰가 문득 떠올랐다.

3막 ‘다이아몬드’는 고전발레의 정수를 끌어모은 익숙하면서 화려한 무대였다. ‘사파이어’까지 더해 4막을 만들려던 발란신이 이를 접도록 만든 작품답게 순백의 화려함으로 고전 발레가 융성했던 러시아 황실발레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현했다. 특히 차이콥스키 교향곡 3번 ‘우아한 안단테’ 3악장이 흐르는 10여분에 걸친 2인무는 지난 20일 개막 공연에서 가장 밀도 있는 장면이었다. 이어지는 여성 4인무에서 혼성 8인무로 확대되는 무대는 다시 한 번 기하학적 문양을 만들며 마치 다이아몬드가 빛나듯 강한 인상을 남긴다. 마지막 피날레 5악장에선 마치 황실 무도회처럼 짝을 이룬 무용수들이 장대한 광경을 만들며 우리나라에서 처음 선보인 ‘주얼스’만의 아름다움을 남김없이 선사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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