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10명 중 9명 동의했다는 '각도조절푹신의자', 아무도 모른다

유승목 기자 2021. 10. 2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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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외국어·외래어 순화어 선호도 조사에 '중립' 의견까지 '긍정'으로 계산

"우리말을 써야 한다는 건 공감하지만 리클라이너를 '각도 조절 푹신 의자'라고 바꾸는건 조금 난감하네요. 크게 와닿지도 않는데 이미 리클라이너로 굳어진 이름을 바꿔야 할 이유가 있나요. 사실 순화어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리클라이닝 기능을 접목한 안마의자 등을 판매하는 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국어원(이하 국어원)과 함께 유관 분야 전문가가 모인 '새말모임'에서 어려운 외국어·외래어를 다듬은 순화어를 발표하고 있다. 각도 조절 푹신 의자는 지난 3월 제시됐다. 그러나 7개월이 지난 지금도 관련 매장에서 직원은 물론 고객들도 리클라이너를 바꿔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순화어가 선정되는 과정을 되새겨보면 다소 의아한 일이다. 국어원은 순화어를 제시하기 전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수용도 조사를 하는데, 매번 응답자 90% 이상이 순화어 활용이 적절하다고 답하기 때문이다. 정말 국민 10명 중 9명이 각도 조절 푹신 의자를 반긴걸까.

방탄소년단(BTS)이 한글로 가사를 쓴 노래가 빌보드를 석권하고, 미국에서 '오징어게임'에 나온 한국어의 숨은 의미를 탐구하는 등 한국어·한글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말을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정부 정책은 제자리걸음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민들의 공감을 사지 못하는 순화어만 남발할 뿐 실용적인 공공언어 개선에 소홀하단 지적이 나온다.

24일 정부에 따르면 문체부와 국어원은 디지털환경 변화 등으로 심각해진 국어 오염을 막기 위해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새말모임에서 142개의 순화어가 등록됐고, 올해는 66개 단어를 순화했다. 대표적으로 △근육키우기(벌크업) △초단기노동자(긱워커) △책꾸밈(북아트) △디지털 친화 어르신(실버서퍼) 등이다.

국어원은 대체 순화어 선정 근거로 국민 선호도 조사를 내세운다. 적절성을 검증하기 위한 설문조사에서 긍정 비율이 60% 이상이면 채택한다. 그간 제시된 순화어의 조사 통과율은 95%다. 그러나 조사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것과 달리 해당 내용을 다룬 기사를 제외하면 순화어들이 실생활에 사용되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다소 억지로 순화어를 만들다보니 벌어진 일이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해당 선호도 조사에서 외래어·외국어를 해당 순화어로 바꾸는 적절성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매우 그렇다 △그렇다 △보통이다 △그렇지 않다 △매우 그렇지 않다 5가지인데, 국어원은 '보통이다'까지 긍정 비율로 포함해 집계했다. 중립적인 응답까지 순화어를 지지하는 집단으로 분류한 셈이다.

보통 비율을 응답에서 제외하면 올해 하반기 등록된 25개의 순화어 중 11개가 기준에 미달한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사태로 화제가 됐던 '오너리스크'의 경우 국어원이 지난 8월 대체어로 '경영주발 악재'를 제시하면서 적절하다는 응답이 90%가 넘었다고 계산했지만, 실제 보통이다(중립) 의견을 제외하면 긍정 비율은 47.9%에 그쳤다. 안개형냉각(쿨링포그), 동네생활권(하이퍼로컬) 등도 마찬가지다.

순화어가 환영받지 못하는 데엔 새말모임 구성원의 획일화도 한 몫 했다는 지적이다. 올해 새말모임 위원은 대다수 국문학과 교수와 기자 등 인문계열 전문가로 구성됐다. 교육·법조·금융·과학계 등 다양한 분야 종사자가 포함됐던 지난해와 차이가 크다. 순화어가 단순 번역이 아닌 만큼 실무 종사자의 의견이 필수적이지만 이 부분이 고려되지 않아 생활과 동떨어진 단어가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

문체부 관계자는 "새말모임에서 전문가들이 대체어를 만들지만, 학문적이고 규범적인 틀 안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라 어떤 측면에선 대중들이 사용하는 말이 더 감각적일 수 있다"며 "국민들이 직접 제안한 말이 더 적절한 순화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용성이 떨어지는 공공언어 개선 문제는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지적사항으로 꼽혔다. 이 의원은 지난 19일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에서 "등록된 순화어를 실제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단 지적이 나오지만 실태조사 등 사후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실생활에 쓰일 수 있도록 양보다 질을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장소원 국어원장은 "전문가 의견을 엄격하게 반영해서 순화어를 만들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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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목 기자 mo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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