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법치가 괴물이 되어갈 때
[세상읽기]
조형근 ㅣ 사회학자
장면1. 2021년 6월2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법치’와 공정을 내세우며 정치참여를 선언했다. 천명 가까운 지지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연호한다. 빼곡한 군중이 서로 부대끼며 함성을 질러댄다. 코로나19 걱정 따위는 없다. 경찰도, 방역당국도, 언론도, 원수가 된 여당도 시비 걸지 않는다.
장면2. 10월10일, 여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영상 속의 이재명 후보는 열광하는 군중 속을 주먹악수로 헤쳐 가고 있다. 한 지지자는 마스크도 벗고 목 놓아 이재명을 외친다. 서로 문제 삼지 않는다.
거대 정당들의 경선 현장에 지지자들이 운집하고 있다. 후보들은 사람 많은 곳만 골라 다닌다. ‘턱스크’와 ‘코스크’가 난무하고, 비말 날리는 환호성도 요란하다. 노마스크 후보도 있다. 거리 유지도, 체온 측정도, 명단 작성도 없지만 지지자도, 경찰도, 방역당국도, 언론도 믿는다. 여기선 절대 코로나가 퍼지지 않는다고. 기적이다.
힘센 정당들의 밀집 집회가 자유롭게 열리는 동안 노동자나 자영업자들의 생존권 요구 집회는 방역수칙을 아무리 잘 지켜도 금지된다. 민주노총은 집회 때마다 마스크 착용, 명단 작성, 체온 측정, 거리 유지까지 온갖 방역수칙을 다 준수해왔다. 그동안 한명의 확진자도 나온 적이 없다. 그래도 늘 불법이다. 수십명이 과로사한 택배노조의 “살려달라”는 집회도, 누차 영업제한을 당한 자영업자들의 손실보상 요구 집회도 불법이다.
권력을 잡아 기득권화됐다고는 해도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만큼은 지키리라 믿었던 정권이다. 약자들의 생존권 요구를 가로막는 데 고뇌가 안 보인다. 코로나 확산 방지가 명분이니 이해할 수 있을까? 코로나라고 해도 집회와 시위의 권리 등 기본권의 본질은 침해하면 안 된다는 유엔과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상기해본다. 민주정권이 차벽을 쌓아 집회를 원천봉쇄하는 풍경이 아득하다. 민주노총 위원장은 구속됐고, 택배노조 관계자 30명은 검찰에 송치됐다. 10월20일의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 관계자들에 대한 엄정수사 방침도 나왔다. 국제노동기구 사무총장을 내겠다는 정부의 태도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복역 중이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규정까지 고쳐가며 합법적으로 풀어준 정부의 준엄한 법치(!)다.
‘부회장님’의 자유를 촉구하던 <중앙일보>는 10월20일의 집회를 보도하며 “법치를 파괴하는 괴물 노조”라는 표현을 썼다. 누가 진짜 괴물일까? 하지만 보수언론의 패륜적 표현에는 제 나름의 자신감이 있다. 작년 5월과 11월에 실시된 <시사인>과 <한국방송>(KBS)의 여론조사를 보면 박근혜 정권 시절이던 2016년에 비해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 성향이 오히려 높아졌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할수록 권위주의 성향이 일관되게 높았다. 인권 보장보다는 법질서가 중요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집단들은 척결해야 한다는 강경한 태도가 이 층에서 가장 높다. 누구보다 민주주의 의식이 높을 것 같은 사람들이 왜? 위기에 맞서 정권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생각할 법하다. 방역 성과가 훼손되어 정권의 책임이 커질까 걱정스러울 법도 하다. 지지하는 정권이 생기면 나도 저럴까? 묻고 돌아본다. 위기를 빌미로 권위주의를 강화하던 독재정권에 맞서, 위기를 넘는 힘조차 민주주의에서 나온다고 부르짖던 그때 그이들을 추억한다.
위기의 와중에 소득이 늘고 집값도 폭등한 중상층 이상은 왜 이 시기에 사람들이 굳이 거리로 나오는지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얼마 전 발표된 ‘코로나19와 직장생활 변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 이후 비정규직의 실직 경험은 정규직의 다섯배에 가깝다. 자영업자의 처지는 말해 무엇하랴. 이 정부는 코로나 피해가 가장 작았던 나라들과 비교해도 4분의 1 수준의 재정지출에 그쳤다. 그 차이만큼 서민의 고통이 깊다. 불법이라는데도 거리로 나오는 이유다.
법치의 화신 자베르 경감은 굶주린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치는 장발장식 연민의 도덕률을 혐오했다. 그리고 법치는 괴물이 됐다. 범속한 사상가들이 가진 자들의 불법과 반칙을 비판할 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합법적 규칙이야말로 진짜 괴물이라고 폭로했다. 저항이 불법인 이유는 착취가 합법이기 때문이라고. 힘센 자들의 규칙을, 그들의 법치를 목도하며 이 낡은 19세기 서사들이 생생해지는 요즘이다. 이편도 저편도 아닌, 아래편의 눈으로 보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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