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협 조합장의 파격.."농업용 로봇 마음껏 만들라"

정혁훈 2021. 10. 2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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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승 남서울농협 조합장, 스타트업에 연구공간 무상 임대
향후 1년간 딸기 재배용 로봇 개발 박차..농가 보급 기대
안 조합장 "로봇으로 쉽게 농사짓도록 하는 게 농촌 위하는 길"

"농촌이 고령화되고 있고 농사 현장에는 일손이 늘 부족하기 때문에 농업용 로봇이 상용화하면 그 파급 효과는 막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용승 남서울농협 조합장(63)은 서울 강남권에 조합이 보유하고 있는 사무실을 농업용 로봇 스타트업에 무상으로 임대해준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안용승 남서울농협 조합장이 하나로마트 매장에서 과일을 들어보이고 있다.<이승환 기자>

안 조합장은 네덜란드에서 열린 제2회 농업 인공지능(AI) 경진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팀이 주축이 돼 설립한 스타트업 디지로그(주)가 농업용 로봇을 개발할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비어 있는 사무실을 흔쾌히 내주었다. 디지로그는 이 공간에서 딸기 재배용 로봇을 개발·상용화하는 작업에 나선다. 이 로봇은 카메라와 AI를 이용해 딸기 병해충을 감지하고 집게를 사용해 다 익은 딸기를 자동으로 수확한다. 앞으로 1년 뒤에는 로봇을 농가에 보급할 수 있을 것으로 디지로그 측은 예상했다.

30평(약 99㎡) 가까운 사무실을 무상 임대하는 걸 조합장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조합 이사진이 그의 제안을 듣고 지지를 표명해주었다. 안 조합장은 "도시농협의 존재 가치는 농촌을 얼마나 잘 지원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농업용 로봇이 개발되면 그 혜택을 많은 농가들이 볼 수 있는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는 데 모든 이사진이 공감을 표했다"고 전했다.

안용승 남서울농협 조합장(가운데)이 디지로그(주) 서현권 대표(오른쪽), 최대근 부사장(왼쪽)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디지로그는 무상으로 임대받은 사무실을 농업용 로봇 연구소로 활용하게 된다.<이승환 기자>

안 조합장이 산지 농산물 직거래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그런 생각 때문이다. 남서울농협은 1998년 서울 양재역사거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24년째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방배 복개천에서 매주 두 차례 장터를 여는 것을 비롯해 곳곳의 신용 점포 유휴 공간에도 상설 장터를 두고 있다. 지금은 방배 복개천에서 매주 두 차례 장터를 운영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곳곳의 신용 점포 유휴 공간에도 상설 장터를 두고 있다.

안 조합장은 "농민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바로 판로를 확보하는 것"이라며 "수확한 농산물을 가격 예측도 안 되는 경매장에 내는 것보다 직거래 장터에서 안정적인 가격을 받는 게 농민 입장에서는 이득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 어디에 있는 농산물을 가져다 직거래를 하면 소비자 반응이 좋을지 늘 고민한다. 직원들은 더 좋은 농산물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닌다. 다만 직거래 장터를 마음껏 개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안 조합장은 "관내에 직거래 장터를 열기 좋은 곳이 더 있지만 지방자치단체 승인을 받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직거래 장터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용승 남서울농협 조합장이 하나로마트 매장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이승환 기자>
그는 소매금융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을 농촌 지역으로 환원하는 것에도 누구보다 열심이다. 산지농협에 1년간 무이자로 자금을 지원해주는 금액이 올해만 16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도시농협 중에서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뿐만아니라 어려움을 겪는 산지농협에 농기계와 영농자재를 무상으로 지원하는 사업도 벌이고 있다. 그는 "사정이 어려운 지역조합에 다만 얼마라도 비료와 농약과 같은 농자재를 무상으로 지원해주면 너무도 좋아한다"며 "그럴 때 도시농협에서 일하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 역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농고를 나오고 농협에서만 43년째 일하는 농업인이다.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려던 계획이 아버지의 극렬한 반대로 무산되자 차선책으로 농협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1978년 그가 남서울농협에 입사했을 때만해도 지금의 서초구 일대는 논밭 천지였다. 안 조합장은 "입사가 결정되고 수원에서 양재동 쪽으로 넘어오는데, 도로는 흙먼지가 가득하고 주변은 시골만도 못할 정도로 낙후돼 있었다"며 "80년대 들어 개발 붐이 일면서 농촌이 도시로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농협 일을 하면서 애환도 많았다"고 술회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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