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42] 피
이라크의 가수가 노래 불렀다
열렬히 허리를 비틀어 가며
“사담에게 이 피를 바치자
사담에게 이 생명을 바치리”
어딘지 귀에 익은 노래
45년 전 우리도 불렀다
독일 어린이들도 불렀다
지도자의 이름을 걸고
피를 바치자 따위의 노래를 부를 땐
변변한 일은 없는 법
피는 온전히 자신을 위해 써야 하는 것
굳이 바치고 싶다면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쓰는 것이야말로
-이바라기 노리코 (茨木 のり子 1926-2006)
(성혜경 옮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쓸 피가 내게 남아 있나? ‘변변한’이라는 형용사가 절묘하다.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가 생각났다. “과거에 종교나 사회주의에 심취한 적이 있는데, 그때 사실은 사랑에 빠졌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사랑에 빠지지 못해서 종교나 이념에 깊이 몰두하게 된 것이지.”
피처럼 선명한 언어들. 허튼 수식어 없이 꼭 필요한 말만 엮어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쓰려고 노력했던 위대한 시인.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군국주의를 예리한 ‘여자의 말’로 비판했던 노리코 여사에게 조선은 알고 싶은 이웃 나라였다. 남편과 사별한 뒤 한국어를 배우고 윤동주의 시를 일본에 소개했던 이바라기 노리코. 어떤 문학상 수상도 거부했고 장례식도 조의금도 거부한다는 편지를 남기고 그가 타계한 몇 달 뒤 일본을 방문했다. 아사히신문 기자에게서 노리코 여사의 집에 배용준의 사진이 크게 붙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이도 지식인인 척하는 남자들에게 어지간히 실망했던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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