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 이태원 대표 '임권택 감독의 영화적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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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취화선'을 제작한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전 대표가 24일 세상을 떠났다.
1983년 태흥영화사를 설립한 이대표는 1980~2000년대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어른이자 청년으로써 임권택 감독과 함께 한국영화계의 기둥으로 평가받았다.
태흥영화사의 마지막 작품이자 임감독의 99번째 영화인 '하류인생'은 맨주먹으로 자수성가한 이대표의 삶을 오롯이 담아낸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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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영화 ‘취화선’을 제작한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전 대표가 24일 세상을 떠났다. 이대표는 지난해 5월 낙상사고로 약 1년 7개월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있었다.
1983년 태흥영화사를 설립한 이대표는 1980~2000년대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어른이자 청년으로써 임권택 감독과 함께 한국영화계의 기둥으로 평가받았다.
이장호 감독의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어우동'(1985),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장선우 감독의 '경마장 가는 길'(1991) 등을 제작했다.
또한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부터 '하류인생'(2004)까지 임감독과 오랫동안 영화적 동지로써 동행했다. 영화계에 따르면 ‘만다라’(1981)를 보고 임감독에게 반한 그는 애초 태흥영화사의 창립작품으로 ‘비구니’를 결정했지만 당시 군사정권과 불교계 갈등으로 인해 완성하지 못했다.
이후 배우 강수연에게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를 시작으로 임감독과 15년간 희노애락을 함께 했다.
'장군의 아들'(1990), ‘서편제’(1993)로 한국영화계의 흥행사를 썼고, '태백산맥'(1994) '축제'(1996) 등과 같은 주목할 작품을 내놨으며, 임권택 감독에게 감독상을 안긴 '취화선'(2002)의 제작자로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기도 했다.
태흥영화사의 마지막 작품이자 임감독의 99번째 영화인 '하류인생'은 맨주먹으로 자수성가한 이대표의 삶을 오롯이 담아낸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앞서 임권택 감독은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에서 “이태원 씨는 내가 하자고 한 것에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다”고 회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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