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영화제 온라인 혁신" vs "본질 잃진 말아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영화제에도 ‘뉴노멀’을 만들었다. 국내외 유명 영화제에서 대면 행사가 줄고, 온라인 행사가 늘었다. '사람들이 모여 영화를 즐기는 축제'인 영화제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19로 기로에 선 영화제를 돌아보는 행사가 23일 오후 강원 강릉시 명주예술마당에서 열렸다. 제3회 강릉국제영화제 주요 행사인 강릉포럼이었다.
‘당신은 여전히 영화(관)를 믿는가’를 주제로 한 이날 행사에는 해외 영화제 수뇌부 9명이 참여했다. 코로나19 시대 이례적인 대면 국제 모임이다. 바냐 칼루제르치치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기조 발제자로 나섰다. 김동호 강릉영화제 이사장이 토론을 주재하고, 김홍준 강릉영화제 예술감독이 사회를 맡았다.
칼루제르치치 위원장은 코로나19 이후 로테르담영화제가 겪은 변화를 바탕으로 영화제의 앞날을 전망했다. 그는 지난해 3월 위원장이 됐다. 올해 50회 영화제를 대대적으로 준비하려 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계획이 뒤엉켰다. 칼루제르치치 위원장은 코로나19로 상황이 매번 급변하며 “영화제 팀 전체가 광란의 롤러코스터를 탔다”고 말했다.
로테르담영화제는 코로나19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고 행사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영화제를 2월과 6월 두 차례로 나눠 열었다. 온라인 상영, 관객과 감독의 온라인 만남 행사를 적극 도입했다. 칼루제르치치 위원장은 “영화제는 우연한 만남과 교류가 강점인데, 온라인은 모두 계획돼 이뤄진다는 단점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관객이 온라인 댓글로 의견을 교환하는 즉시성을 발휘하며 커뮤니티를 만들어낸 점”을 주시했다. “관객에게 거실에서 영화제 영화를 즐길 기회를 제공”하고 “관객과 감독이 온라인으로 좀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던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칼루제르치치 위원장은 “영화제와 온라인 상영 플랫폼은 서로 보완적이고 독립적인 개체”라고 주장했다. “영화제가 관객에게 제공하는 경험, 도시 활동 진작 효과를 대체할 것은 없다”는 이유에서다. 칼루제르치치는 “최근 대면 영화제가 재개되고 있으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얻은 경험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테르담영화제에 와야 볼 수 있었던 영화를 네덜란드 전 국민이 관람할 수 있게 된 것은 굉장한 것”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그는 “영화관은 민주주의의 심오한 공간으로 광장과 같은 곳”이라며 “코로나19로 영화관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더 깊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새무얼 하미에르 뉴욕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생존을 위해 우리도 온라인 상영을 선택했고 뉴욕을 넘어 미국 전역에서 영화를 보여줄 수 있었다”고 말했지만 “정신(Soul)을 지키지 못한 단점이 있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올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하나 영화관에서의 경험은 영화제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하미에르 위원장은 “더 많은 관객이란 확장과 성장만 생각할 것인가, 우리가 비즈니스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온라인 영화제는 가상이지 진짜가 아니다”라며 “저의 역할은 사람들이 다시 영화관을 가도록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화제는 10일 안팎 기간에 고정된 장소에 열린다’는 통념을 뒤집은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다. 중남미 최대 영화 축제인 카르타헤나콜롬비아국제영화제는 올해 60회 행사를 3~8월에 분산 개최했다. 한 달에 한 번 보름달이 뜨는 날에만 2회씩 야외 여러 곳에서 영화를 상영했다. 코로나19로 콜롬비아 영화관이 모두 문을 닫은 상황을 반영한 조치였다. 안스가 포크트 수석 프로그래머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없었으면 생각하지 못했을 아이디어”라며 “앞으로도 야외 공간을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릉=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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